산 절개해 만든 임도, 산사태 피해 키웠다…"물받이 역할해"

입력 2023-07-20 16:42:46 수정 2023-07-20 21:02:16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모습. 마경대 기자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모습. 마경대 기자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모습. 마경대 기자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모습. 마경대 기자

경북에서 집중호우로 산사태 피해가 컸던 데는 산을 절개해 만든 임도가 물받이 역할을 한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임도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시공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많아 비 피해를 가중시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일 산림전문 기술사 등 산림전문가들에 따르면 경북 영주 장수면과 봉현면 등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대부분 임도 가장자리를 따라 시작했다. 산을 깎아 포장이 안된 흙 길이 물받이 역할을 하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임도는 ▷조림·육림·간벌·주벌 등 산림사업 대상지 ▷산림경영계획이 수립된 임지 ▷산불예방·병해충방제 등 산림의 보호·관리를 위해 필요한 임지 등에 설치 한 산길을 말한다.

임도는 개설과정에서 예산 등의 문제로 설계와 시설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게 현실. 임도 개설 시 1㎞에 사업비는 고작 2억원에 불과하다. 1㎞에 4억5천만원이 소요되는 농로공사(수로관 설치 포함)와 단순 비교해도 차이가 많다.

임도의 설계와 시설기준을 보면 ▷계류를 횡단하는 구간에는 가능한 배수구 막힘 우려가 없는 물넘이 포장(세월교) 또는 교량 등으로 시공해야 하며 ▷임도설치로 인해 발생하는 나무뿌리·가지 등이 강우 시 유실되지 않도록 운반·정리되도록 설계 ▷배수구·암거 등이 막힐 우려가 있는 지역은 골막이·소형사방댐 등을 시공 등 여러 조건에 맞춰 설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본지 취재진이 산사태 피해 현장인 영주시 장수면 성곡1리의 과수원 등 피해 현장을 둘러본 결과 계류(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를 횡단하는 구간에 설치토록 한 세월교와 교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토사 유출이 의심되는 곳에 설치토록 한 골막이 소형 사방댐도 보이지 않았다. 800~1천㎜배관을 묻어 물이 빠지도록 시공한 것이 전부였다.

임도에서 출발한 토사가 산 아래로 흘러 내렸다. 마경대 기자
임도에서 출발한 토사가 산 아래로 흘러 내렸다. 마경대 기자

피해 주민 A씨는 "임도가 화를 키웠다"며 "계곡에 설치된 배수관은 크기가 너무 작아(800㎜)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다 수용하지 못했고 비포장 임도는 물을 머금어 산사태의 발단이 됐다"고 주장했다.

B씨는 "마을 뒷산은 가팔라 비가 오면 계곡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곳인데도 세월교나 사방댐도 설치하지 않았고 800㎜ 프라틱 관을 배수로로 사용했다. 산사태는 임도 때문에 발생한 예견된 인재"라고 성토했다.

이곳 임도는 경북도산림환경연구원(이하 산림연구원) 북부지원이 지난 2016년 사업비 8억원을 들여 영주시 장수면 성곡2리에서 성곡1리까지 4㎞구간에 임도 개설공사에 찾수, 2018년 완공했다.

임도 공사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깬돌이 토사와 함께 흘러 내렸다. 마경대 기자
임도 공사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깬돌이 토사와 함께 흘러 내렸다. 마경대 기자

경북도산림연구원 북부지원 관계자는 "임도 사업비 대비 사업물량을 소화하려면 많은 문제가 있다"며 "현실성 있는 사업비 지원 등 제도 개선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산림전문 기술사는 "기존의 산은 미세 세립토가 코팅이 돼 방수 기능이 유지되지만 산을 절개해서 만든 임도는 물이 스며들기 때문에 오히려 배수기능과 자연 유수 방법을 강화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모습. 마경대 기자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모습. 마경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