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노동, 연금, 교육 3대 개혁을 국정 과제로 천명했지만 7개월이 다 지나도록 개혁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로드맵은 여전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최근 몇 개월간 우리 사회·정치를 수놓은 키워드는 후쿠시마 오염수, 수능 킬러 문항, 양평고속도로 정도다. 외교, 교육, 국책사업에 대한 굵직한 이슈에 국민들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부 여당은 설명하지 않고 수족관 물을 마시는 등 기행을 일삼고 정쟁화시키기에 급급하다.
윤석열 정부 대부분의 정책 추진 과정을 보면 공론화와 숙의는 없고 일방적이고 즉흥적이다. 마무리는 편가르기와 압수수색이다. 결국 이러한 정치 행위가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일로 귀결된다.
현 정부 여당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내용은 없고 구호와 수사만 넘쳐난다. '건폭' '킬러' '괴담' 등 자극적인 용어로 쭉정이 정책을 포장하고 정당화시키려 한다.
둘째, 검찰 권력을 내세워 국민을 협박한다. 〈한겨레〉가 14일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통해 받은 영장청구 통계를 보면 2022년 압수수색영장 청구 건수는 2011년보다 3.6배 넘게 늘었다. 형사사건, 구속영장, 체포영장 청구 건수는 모두 줄었는데, 압수수색영장 청구만 폭증했다.
셋째, 이념 갈등을 부추겨 국민을 편 가른다. 모든 정책을 추진하면서 문재인 정부 탓만 한다.
넷째, 내로남불과 몰염치로 정치 혐오를 조장한다. '공정'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상위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시키고, 살아 있는 권력을 성역으로 만들고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신임 부장검사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살아 있는 권력 등 사회적 강자의 범죄를 엄벌해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말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로 읽힌다.
상식적이라면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줄이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정부와 여당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보수정당이 이념 공세와 정치 혐오를 조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대결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분노의 정치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사례에서 학습효과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맞물려 생각해 보면 보수정당이 이념 공세와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이유는 좀 더 분명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론조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는 발언도 이러한 전략적인 판단에 기인하는 것이다.
첫째, 유권자 모빌라이제이션(전시체제화)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 혐오와 이념 공세를 통해 보수정당은 "우리와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당"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지지자들에게 당당한 자부심과 차별화된 정치적인 선택을 제공한다. 즉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유권자들의 이성과 정서적인 면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강한 감정과 이념적인 비판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불편을 느끼게 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보수정당의 메시지에 더욱 흡입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적인 영향력은 선거 시즌에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별화와 선거구도 형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치 혐오와 이념 공세를 통해 보수정당은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강조하고, 경쟁자들을 비판하며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보수정당은 이념 공세와 정치 혐오를 이용하고 그것이 선거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념 공세와 정치 혐오 조장이 보수 결집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확장성은 떨어지고 스스로 고립시키는 반작용도 크게 일어난다.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30%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반대급부를 끌어안을 바구니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원내 1당이라는 자만에 빠져 안주하는 듯하다. 민주당의 당내 갈등이 지속되고, 혁신하지 못한다면 보수정당의 혐오 정치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 후퇴와 민주주의 후퇴는 고스란히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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