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더러운 평화’라고?

입력 2023-07-13 20:01:10

정경훈 논설위원.com
정경훈 논설위원.com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념이다.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지난 4일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도 "아무리 더러워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했다.

'더러운 평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1930년대 프랑스 평화주의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당시 프랑스 교사조합 지도자 조르주 라피에르(George Lapierre)를 들 수 있다. 프랑스 교사조합은 1920년대부터 1차 대전 때 독일군에 맞서 싸워 프랑스를 지켜낸 군인들을 기린 교과서를 '평화의 성취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비판했다.

라피에르는 이런 '호전적' 교과서를 학교에서 몰아내는 운동을 벌였다. 이에 자신들의 교과서가 퇴출 위기에 놓이자 출판사들은 라피에르에 순응해 프랑스 군인들을 조국을 수호한 영웅이 아니라 전쟁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폄하한 새 교과서를 내놓았다. 이런 평화주의는 평화를 이루지도, 라피에르가 평화롭게 생을 마치도록 하지도 않았다.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됐고 라피에르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돼 1945년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철학자인 시몬 베유와 작가 장 지오노도 다르지 않다. 베유는 독일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독일의 헤게모니가 프랑스의 헤게모니보다 더 나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의 헤게모니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양친이 유대인인 베유는 나치 점령하 유대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를 떠났다가 1943년 망명지 영국에서 객사(客死)했다.

지오노는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 앞서 이런 물음을 던졌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무엇인가?" 그는 프랑스인이 독일인이 될 것이라고 자답(自答)했다. "나는 죽은 프랑스인이 되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독일인이 되겠다." 지오노는 그 말대로 행동했다. 나치와 비시 괴뢰정부에 이용될 수 있는 글로 부역(附逆)했다. 이 대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공부 많이 하고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