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으로 알려진 재일한국인 건축가 유동룡
수·풍·석미술관, 방주교회 등 제주에 대표작 남겨
딸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지난해 12월 개관
제주 땅덩어리 형상화한 타원형 공간 설계 눈길
이타미 준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유동룡. 1937년 일본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그는 평생 귀화를 거부하고 '유동룡'이라는 이름을 지키며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이타미 준은 당시 일본에서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려면 반드시 일본식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만든 예명이다.
남다른 감성으로 서예, 회화, 조각 등 예술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갔던 그는 2005년 프랑스 슈발리에 예술문화훈장, 2010년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 받았다.
평생을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해온 그가 특히 사랑한 곳이 바로 제주다. 그는 말년에 수·풍·석 미술관을 비롯해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등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진 인상적인 건축물들을 남겼다.
2011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인 지난해 말, 제주에 유동룡미술관(한림읍 용금로 906-10)이 문을 열었다. 그의 딸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유동룡미술관에 들어서면 미술관을 가득 채운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키게 된다. 향기작가 한서형이 유동룡의 서재에서 풍기던 먹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를 모티브로 직접 만든 향이다.
미술관 관계자가 전시실이 있는 2층부터 관람할 것을 추천했다. 3개 전시실과 영상 라이브러리룸에서는 11월 1일까지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열리고 있다.
전시실 전반에는 1971년 그의 첫 작품인 '어머니의 집'부터 제주의 건축물들까지 그의 대표작들이 사진과 모형, 드로잉으로 펼쳐져 있다. 그가 쓰던 문구와 책 등 서재를 그대로 옮겨온 공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지키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그의 고뇌가 느껴진다.
제주의 땅덩어리를 형상화한 타원형의 공간인 1전시실에는 그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긴 제주의 대표작들이 모여있다. 설계 스케치와 모형, 사진에 이어 실물을 담은 영상으로 눈을 돌린 방문객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햇빛, 비, 눈 등을 고스란히 받으며 자연 속에 녹아든 건축물의 실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미술관 1층은 이러한 감동의 여운을 충분히 사색하고 명상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온통 먹색으로 칠해진 라이브러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사유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고, 티라운지에서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입장 시 배부되는 티켓으로 티서비스 혹은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라이브러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푸른 풀 사이로 검은 바닥면들이 눈에 띈다. 임효린 유동룡미술관 총괄실장은 "빌레는 용암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한 너럭바위다. 흙으로 덮여있었는데, 미술관 공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이 빌레를 살리고자 설계를 다시 했고, 준공이 8개월 정도 미뤄지기도 했다"며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유동룡의 건축 사상과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룡미술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30분 단위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듣는 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배우 문소리, 정우성 등의 목소리로 오디오 도슨트를 운영 중이니, 휴대전화와 연결되는 이어폰을 가져오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인근에 마을 전체가 미술관과도 같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과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이 몰려있어 함께 들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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