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실의 요구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수신료 분리 징수를 의결했다. 이 의제는 앞으로 몇 단계의 절차를 밟게 되겠지만 여러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 목적을 '공정 보도와 방만 경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정 보도와 방만 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KBS에 대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걱정이 이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신료 분리 징수'가 그 대안일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KBS 문제의 근원은 '수신료'가 아니라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것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KBS한국방송공사의 지배구조는 정치적으로 '나눠 먹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집권 여당과 야당이 7대 4의 지분 비율로 구성된다. 이 이사회가 사장과 감사를 뽑는다. 이것을 '정치적 후견주의'라고 한다.
정치적 후견주의는 공영방송 KBS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면서 책임경영을 하도록 고안한 것인데, 실제 이를 운영해 보니 이런 지배구조 구성 방식이 공영방송 KBS를 불안하게 하고 정권 교체기가 되면 끊임없이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지배구조 구성 방식 때문에 KBS는 공정 보도 시비와 책임경영 시비로 바람 잘 날이 없다. KBS 임원의 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 새로운 집권 세력은 KBS 지배구조를 장악하려는 유혹을 떨굴 수 없다. 공영방송을 마음대로 다루겠다는 권력의 욕망에 빠지게 된다.
KBS의 역사에서 이런 사례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배구조 장악 유혹과 욕망은 정권 교체와 함께 현실이 되어 '공정 보도와 책임 경영'을 어지럽게 만들곤 했다. KBS 지배구조를 장악하기 위한 악순환이 거듭될 때마다 KBS 내부는 균열과 대립으로 어수선하게 되고 공영방송의 역량은 훼손되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런저런 실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그것 때문에 따가운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이 KBS 일꾼들의 탓만은 아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하는 것은, '희생자 비난론'에 기초한 공영방송 길들이기이며, 아무리 선의로 본다 하더라도 본질을 비켜난 헛다리 짚기 해법이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다. 재난방송을 주관하며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방송을 꾸준히 챙기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프로그램을 갈고닦으며,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가꾸는 노력을 잊지 않고 우리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 가운데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KBS는 오래전부터 저녁 7시 뉴스 편성권을 지역에 던져 주었으며 지역 네트워크 역량 강화를 위해 투자했다. 대구에서 2019년 지우진 PD가 〈기억, 마주 서다〉라는 프로그램으로, 2022년 박진영·김도훈 기자가 〈GPS와 리어카: 폐지 수집 노동 실태 보고서〉라는 기획기사로 각각 영예의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것도 그들의 노력과, 지역의 가치를 강조하고 지역 역량 강화를 위해 애쓴 공영방송 KBS의 정책이 이룬 열매라고 할 수 있다.
KBS 문제는 정치인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 후견주의 때문이지 KBS 자체의 탓이 아니라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KBS 문제를 수신료 문제로 비틀어 수신료 분리 징수를 해법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그 의도를 공영방송 지배구조 장악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수신료 분리 징수가 아니라 정치적 후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넘어서는 일이 본질이고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도 미루어 놓았던 일이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넘어서는 지배구조의 다양한 대안 모색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 과제를 수행하여 공영방송 체제를 제대로 세우는 초석을 놓기 바란다. 수신료 분리 징수는 KBS 문제 해결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공영방송 시스템 자체를 망가뜨리는, 공동체 자해행위일 뿐이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
부동산 침체 속에서도 대구 수성구 재건축 속도…'만3' 산장맨션 안전진단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