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태양은 공중에 떠 있고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낭창낭창 흔든다. 벌써 짙어진 녹색 나뭇잎들은 기름 바른 듯 반짝이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볕 좋고 바람 좋고, 참 좋은 계절이다" 하며 감탄을 한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죽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생의 길흉화복을 두루 겪고 인생을 알 만큼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이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 물음은 불가해하기 짝이 없다.
인류는 오랫동안 불사에의 소망을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회춘이나 죽지 않는 소망은 가망 없는 짓이다. 인간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땅속에 매장된 시신은 부패하고 원소로 해체되어 사라졌을 테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살아서 무병장수를 꿈꾸었을지도 모를 그들은 결국 흙에 묻힌 채로 썩어 분해되었을 테다. 생명 활동을 마치고 사라진 존재들, 시신이 썩어서 존재 이전으로 돌아간 존재들은 덧없고 애잔하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은 '신은 왜 결국 무로 돌아갈 존재를 창조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토록 생생한 본성과 감각, 지성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적정 온도에서 방치해 둔 음식물은 부패한다. 음식물은 흐물흐물 문드러지고 악취를 뿜어내며 썩는다. 실온에 보관한 떡이 쉬어 곰팡이가 슬었을 때 어린 나는 얼마나 억울하고 슬펐던지. 주방의 부패한 음식들은 식중독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서둘러 이것을 쓰레기로 분리하고 처리한다. 음식물만이 부패하는 건 아니다. 쓸모를 다한 것들, 즉 고양이나 쥐 같은 동물 사체, 낙엽, 배설물, 옷, 가죽 제품, 종이 등이 다 썩는다. 쇠조차도 녹이 슬고 썩어 부스러진다. 썩는 것은 동식물과 쓸모를 다한 것들이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운명이다.
부패는 죽은 것들이 분해되는 전 과정을 아우른다. 이것은 형질 변용이고 소멸이며 다른 한편으로 생성이기도 하다. 부패와 생성은 하나로 포개지는데, 이는 지구 생명이 순환하고 번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생태학에서 구더기, 미생물, 세균류들은 죽은 것들의 자연의 분해자다. 이것들은 썩은 것은 먹어 치우며 유기물이나 무기물로 쪼개서 식물들의 영양분으로 만든다. 미생물이나 곤충 같은 땅의 분해자들은 죽은 것들을 재사용할 수 있게 얼마나 부지런히 가공해 내는지.
잘 썩는 것들이야말로 지구 생명을 이롭게 한다. 플라스틱같이 썩지 않는 것은 미세한 조각으로 쪼개질 뿐 썩지 않는다. 썩지 않는 쓰레기의 처리는 인류 최대의 고민거리다. 이를테면 미세 플라스틱은 땅과 해양을 오염시킨다. 이것들은 먹거리와 함께 우리 몸에 들어와 위해를 가하는 원인 물질이다. 썩는 것들로 지구 생명은 번성한다. 이를테면 퇴비 재료는 썩은 식물들로 땅으로 돌아가서 토양을 살리는 영양분으로 탈바꿈한다. 반대로 썩지 않는 것들은 지구의 영구적 골칫거리이고 재앙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의 세계가 분해 세계와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로 나뉘어 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부패와 분해는 궁극의 운명이다. 죽은 것들을 부패와 분해로 되돌리는 능력을 기반으로 자연계는 순환을 이어간다. 부패라는 과정이 없다면 뭇 생명은 대를 이어 살아갈 수가 없다. 일부러 찾아서 읽은 생명과학자인 후지하라 다쓰시는 '분해의 철학'에서 '부패 기능이 약화되면 먹이 사슬의 기반이 약화되고 이 기반이 약화됨으로써 사슬의 연결이 이완된다. 그리하여 흙이나 바다로부터 주방을 경유하여 인간의 입에 다다르는 음식이 저급화되거나 그 양이 감소되어 기아를 낳는다'라는 구절에 무릎을 친다. 부패가 자연의 섭리라면, 부패에 저항하는 것은 생명 본연의 몫이다. 부패의 기능 속에서 생명 순환의 원리가 작동한다. 모든 생명체는 부패와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다가 제 생명 정보를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자신은 부패한 뒤 무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죽고 사는 것은 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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