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촌초 통폐합 추진, "아토피 때문에 일부러 왔는데" 학부모 반발

입력 2023-05-02 11:21:11 수정 2023-05-02 21:29:16

대구시교육청, 내년 3월 1일 목표로 팔공산 인근 서촌초 통폐합 추진
현재 재학생 31명뿐, 6년새 재학생 수 74.2% 감소… "통폐합 불가피"
아토피 등 피부질환 때문에 서촌초 택한 학부모 많아 반발 거세

대구 동구 중대동에 있는 서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뛰어놀고 있다. 독자 제공
대구 동구 중대동에 있는 서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뛰어놀고 있다. 독자 제공

대구시교육청이 내년 3월 1일을 목표로 팔공산 인근에 있는 서촌초등학교의 통폐합을 추진 중인 가운데, 전체 학부모의 90% 이상이 폐교에 반대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시교육청은 학생 수 감소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동구 중대동에 있는 서촌초를 인근 지묘초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서촌초 재학생은 지난 2017년 120명에서 올해 31명으로 74.2% 감소했다. 현재 한 학년에 한 학급씩 운영하고 있으며,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5.2명이다. 특히 1학년 재학생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지역 전체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 서촌초 통학구역 내 아파트 개발 계획도 없어 학교 소규모화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시교육청은 4년 뒤 서촌초 재학생이 20명밖에 안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 수가 너무 적으면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을 위한 토론, 모둠 학습 등 각종 협력 활동이 힘들고 예체능 수업 운영도 어려워 교육적 제약이 많다"며 "학생이 아무리 적어도 학교가 존재하면 교사를 배치해야 되는데, 정원 감축에 따른 교사 수급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통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이달 중 두 차례 학부모설명회를 열고, 다음 달 중 서촌초 학부모 33가구(병설유치원까지 포함)를 상대로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33가구 중 3분의 2이상(22가구)이 찬성하면 폐교(지묘초와 통합), 3분의 2를 넘지 못할 경우엔 지묘초 분교장으로 개편된다.

최근 이런 계획이 서촌초 학부모운영위원회에 알려지자 학부모들은 '서촌초 존치'라는 선택지 없이 교육 당국이 일방적으로 폐교를 추진하고 있다며 반발에 나섰다.

지난 2011년 '아토피치유 행복학교'(2020년 미래학교로 명칭 변경)로 지정된 서촌초는 교실 내부 벽과 천장, 책상 등 시설을 모두 친환경 소재로 구성하고, 친환경 급식을 제공하는 등 아토피나 비염 치료에 특화된 학교다.

현 재학생의 3분의 1이 아토피 질환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이러한 점을 보고 서촌초를 택한 학부모가 많다. 이외에도 도심에서 떠나 자녀를 팔공산 인근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개인적인 교육 철학에 따라 서촌초에 온 학부모들도 있다.

이 때문에 서촌초 학부모 대부분이 폐교에 반대하고 있다. 서촌초 학부모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폐교 찬반 투표에 따르면, 33가구 중 기권한 3가구를 제외한 30가구 모두 반대에 투표했다.

카카오톡 단톡방 투표 화면 캡쳐. 독자 제공
카카오톡 단톡방 투표 화면 캡쳐. 독자 제공

서촌초 5학년 자녀와 유치원생 자녀 2명을 둔 학부모 A씨는 "대구의 다른 지역에서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일 때도 여기는 '보통'이나 '좋음'으로 나올 만큼 공기가 맑은 곳"이라며 "아이가 비염도 심하고 허약한 체질이라 원래 수성구에 있는 집도 팔고 여기로 이사 왔는데 이제 와서 폐교라니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여기 선생님들은 아이들 수가 적어 아이 하나하나의 식습관을 알고 관리해주신다. 만약 지묘초에 통합되거나 분교장으로 개편됐을 때 여기서 만큼 제대로 된 관리를 받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B씨는 "우리 아이는 피부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며 "피부 질환 관련으로 프로그램이 잘 돼있어 경기도에 살다가 이곳으로 내려왔다"며 "이곳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거의 함께 자라왔고, 피부질환이 있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통합이 이뤄질 경우 이러한 점도 사실 걱정이 많이 된다"고 했다.

시교육청은 지묘초 통합 이후에도 아토피 학생에게 이뤄지는 지원이 계속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통합 이후 전교생에게 친환경 급식을 제공하고, 편백나무로 된 교실을 학년별로 한 학급 정도 구축하는 등 예산 내에서 가능한 부분들을 검토한 뒤 최대한 반영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촌초 총동창회까지 학교 통폐합 반대에 나서며 한동안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장희 서촌초 총동창회 회장은 "서촌초까지 사라지면 이곳은 앞으로 인구 유입이 더 줄어 '죽은 골짜기'가 될 것"이라며 "총동창회 차원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교육감 면담을 요청해 서촌초 존치를 원한다는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