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GPT-4의 미국 변호사시험 합격

입력 2023-04-26 11:13:24 수정 2023-04-26 18:53:06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남영찬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에 기반한 OpenAI사의 GPT-4가 최근 미국 표준 변호사시험(Uniform Bar Exam)에 합격했다. 객관식 시험과 에세이 형식의 필기시험을 모두 통과한 것이다. 그 몇 달 전 같은 회사의 GPT-3.5는 객관식 시험에서 정답률 50% 미만으로 불합격하여 첫 관문 통과에 실패하였다. GPT-3.5는 지난해 11월 말 공개된 후 채 두 달이 못 되어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할 만큼 화제를 모았으나, 변호사시험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단기간에 업그레이드된 GPT-4는 같은 시험에서 76%의 정답률을 보이며 인간 응시자 상위 10%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였다. 인공지능(AI)인 GPT-4가 깊은 법률 지식을 갖추고, 법률 업무 처리 역량이 요구되는 작업까지 수행함으로써 미국의 모든 주에서 인간 변호사에게 적용되는 표준을 충족한 것이다. 뛰어난 성적도 그렇지만 더 주목하여야 할 점은 GPT-4가 낸 오답의 대부분이 인간 응시자의 오답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는 GPT-4가 기계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자료를 읽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등 핵심적인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사람과 비슷하게 사고하고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기술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가의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 역사는 길지 않다. 우리나라의 법률가 중 얼리 어답터들이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1980년대 후반에 컴퓨터를 업무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판사들은 처음에는 판결문 작성에 타자기 기능으로 이를 이용하고, 판결문과 자료를 저장하였다가 필요한 경우 검색하여 활용하였다. 컴퓨터 사용만으로도 업무 효율성이 크게 차이가 났다. 이를 주목한 법원은 1992년도에 전체 판사들에게 업무용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그 이후 1998년 9월에 사법 정보화 정책의 하나로 판례와 문헌을 검색할 수 있는 종합 법률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판사들의 업무 처리는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향후 법률 AI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를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두뇌를 일부 대체한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25일간 미국의 리걸테크 사업 현황을 둘러본 모 미국 변호사는 어떤 리걸테크 솔루션에 M&A 대상 회사의 수백 개 관련 문서를 입력시키고 그중 기술 라이선스 계약들을 찾아서 내용을 요약하여 달라는 요청을 하자 단 5분 만에 원하는 답변을 정리하여 주었다고 했다. 3년 내지 5년 정도의 어쏘 변호사들의 역량이 요구되고 수일이 소요될 업무를 놀라운 속도로 수행하는 것을 보고 경악하였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법률 업무의 처리와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은 지대하고, 영향력의 파도는 예상보다 빨리 도래할 것이다. 법률 AI 회사인 케이스텍스트(Casetext)는 발 빠르게 GPT-4를 기반으로 하는 AI 법률 보조인 코카운슬(CoCounsel)을 출시하였다. AI는 관련 자료와 정보가 많이 축적된 분야에서 탁월한 업무 효율성을 보여준다. 방대한 문서에서의 특정 쟁점에 관한 내용의 발췌와 정리, 관련 판례와 법리 검토, 소송의 승패 확률 추정과 그에 기반한 합의금의 계산, 특허와 기술 분야에서의 침해 가능성 분석 및 이와 유사한 업무에서는 사람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로펌과 그렇지 아니한 로펌은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AI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로펌은 비용 경쟁력을 잃고, 인재의 유치와 유지 능력이 약화되고, 궁극적으로는 고객을 놓치게 된다.

AI가 가져올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바로 사법 정의의 격차 해소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분쟁의 해결과 관련된 고민은 공정성 및 신속성과 비용이다. 사법 정의의 격차는 높은 비용 부담과 사법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고품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AI는 유한한 능력의 인간 법률가와 사법 구조를 담당하는 기관을 훨씬 더 유능하게 만듦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질 높은 법률 서비스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사법 정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그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류에게 양날의 검(double-edged sword)인 AI가 사법 정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때 사람과 따뜻한 공존의 길이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