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한국 야구팀이 일본에서 대패하자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회자되었다. 그 직후 한일 정상회담이 있었는데 같은 말이 다시 떠올랐다. 40년 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당시 우리가 일본을 생각하는 만큼 일본인들은 우리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가령 평소 친하게 지낸 일본의 대기업 간부 가족에게 한식 저녁을 대접했더니 자기 딸이 학교 합창단 일원으로 한국에 공연을 간다고 해서 축하해 주었는데, 한국의 어디에서 공연하느냐고 묻자 평양이라고 답하는 수준이었다.
40년 전이나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점이다. 세계에는 미국과 일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나라가 있다. 그러나 400년 전에 우리가 중국만을 중시한 것처럼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미국과 일본만을 중시한다. 미국이나 일본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하는 반면 우리는 미국과 일본하고만 친하면 만사형통인 듯이 살아간다. 과연 그럴까?
400년 전 4월 11일에 광해군 15년 정권이 무너지고 인조가 집권한 인조반정이 터졌다. 붕당과 사대의 폐해를 통감한 광해군은 명망 높은 인사들을 요직에 앉혀 탕평 정치를 실시하고, 명나라와 후금(뒤에 청나라)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 정책을 폈다. 반면 반정에 성공한 서인 세력은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구체적인 전략도 없이 무조건적인 친명배금 정책을 실시해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게 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실패한 반정으로 평가되는 인조반정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뿌리 깊다.
40년 전에는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에도 우리 정부는 일본 총리에게 식민지배 사죄 발언을 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일본 측에서는 이듬해 전두환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왕(일본에서는 천황이라고 한다)이 "금세기 일시적으로 양국 간에 있었던 불행한 과거는 매우 유감스러우며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사과했고, 이는 세계 최초로 군주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발언을 한 것으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최근 전두환 손자의 맹활약으로 다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두환은 자신의 능력을 맹목적으로 과신하는 만기친람으로 국정을 파탄시키거나, 자신과 가까운 군인들이나 친인척 또는 지인들을 요직에 박는 군인독재가 아니라 각 분야에서 유능한 관료들을 중용하여 실리 외교와 함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령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이 석유파동으로 고통을 받을 때 값싼 원유를 공급받기도 했다. 그보다 더 높이 평가될 만한 것은 전두환의 반전주의 외교정책이다. 특히 북한의 아웅산 테러 이후 군에서 독단적인 행동을 할 경우 반역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한 점은 그가 전쟁을 아는 군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군인이 아니라, 심지어 군대에 가 보지도 않았더라면 당시에 전쟁을 불사했을지도 몰라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또한 몇 년에 걸친 오랜 준비를 거쳐 1987년에 최저임금법을 실시한 것도 전두환의 공적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근로시간제를 보면서 전두환도 이렇게는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에서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는데 우리만 늘리겠다고 야단법석인 것도 '우물 안 개구리' 꼴이다.
그러나 40년 전의 냉전 시대도 미국 일극 시대도 아닌 지금, 미국과 일본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외교야말로 가장 위험한 '우물 안 개구리' 꼴이 아닐까? 지난해 14년 만에 약 477억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무역적자가 발생했는데,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란이나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에너지를 적극 수용하고, 중국은 물론 전 세계와 교역을 늘리는 실리주의에 입각해야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친일이니 반일이니, 친미니 반미가 아니라 오로지 실리로 따져야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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