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아아…. 어젯밤 자정 무렵 무단으로 달마도 액자를 버린 분은 자진신고 바랍니다."
CCTV를 조사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는 둥, 양심을 버리지 말라는 둥. 연거푸 경비 아저씨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한때는 개업선물이나 집들이 선물로 꽤 인기가 좋았던 달마도. 누가 버렸을까. 느닷없이 슬리퍼를 끌고 경비실 앞으로 갔다. 족히 1m는 되는 액자 안에 맨발의 달마대사가 지팡이를 들고 눈썹을 휘날리며 섰다.
p는 오래전부터 금장으로 그려진 자그마한 달마도 한 장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더군다나 속설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가령 13일은 불행, 7은 행운을 준다는 믿음. 보름달이 뜨면 범죄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런 미신의 전형적인 헛소리에 유독 귀를 기울였으니. 그것으로도 부족했을까. 뭐 눈에 뭐만 보인다더니. 어느 날 그와 한적한 야외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참이었다. 인적 드문 공터에 남자가 문짝만 한 족자를 팔고 있었다. 눈꺼풀 없는 달마대사가 용의 등에 올라타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표정.
관심을 두는 p의 눈빛을 읽어서인가. 콧잔등 푹 내려앉은 사내는 입에 거품을 무며 떠든다. 작가 경력이 꽤 있는 고명하신 네팔 스님께서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그러니 시중의 복사품이나 인쇄본과 비교하지 말란다. 수행할 때 수마를 쫓기 위해 눈꺼풀까지 잘라 버린 달마대사의 정신과 재테크를 운운한다. 무병장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돈의 팔촌 집안까지 액운을 제화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말에 p의 눈이 요동쳤다.
결국, 거금을 들여 산 족자는 그녀의 침실 머리맡에 내걸렸다. 부모 모시듯 섬기고 다니는 걸 보노라니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p가 아니었다. 콧잔등 푹 퍼진 사내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지 돈깨나 만지며 여기저기 땅도 좀 사고 건물도 사들였다. 그럴수록 나는 p의 가없는 물욕이 가련해 보였고 p는 숫제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취급을 했다. 이내 달마의 에너지로도 모자랐는지 불교 계열의 신흥종교 단체인 000 사이비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를 서너 해.
나는 어차피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자신뿐이라 말했고 p는 자신이 믿는 신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준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했다. 인간은 궁할수록 어딘가에 매달린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7년 대흉이 들어도 무당은 굶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이들. 종교와 사이비 종교, 관습과 미신, 그 두 축이 추구하는 기착지는 절대 합일될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구에겐 바위가, 원숭이가, 바오바브나무가 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서로의 관점에선 이중생활이고 분열이지만 각각에게는 오르지 하나뿐인 신.
생각보다 사는 일은 질기고 독했다. 기껏 몇천 원의 스티커값조차 아까워 그 영험하다던 달마가 한밤중에 내팽개쳐지는 걸 보면. 용의 등에 올라타 만물을 다스리며 무병장수 운까지 관장한다더니 젊디젊은 p를 하늘로 데려가 버린 걸 보면 나에게 여전히 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딘가에선 신을 찾고 어딘가에선 신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이 떨고 있는 실상.
무릇 지금 신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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