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문 정권은 간첩을 잡지 않았다

입력 2023-02-13 19:46:35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동서 냉전기 서방 최대의 정치적 파문은 1974년 서독의 '귄터 기욤 사건'이었다. 기욤은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국가보안부)가 1956년 난민으로 위장해 서독에 침투시킨 간첩으로, 사민당 소속 빌리 브란트 총리의 비서로 있으면서 비밀 정보를 빼내 동독으로 보냈다. 이런 사실이 발각돼 브란트 총리는 사임했다.

흥미로운 것은 동독이 기욤이 체포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이다. 기욤은 체포되기 오래전부터 슈타지 산하 해외공작총국(HAV) 수장 마르쿠스 볼프에게 서독 방첩기관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고 알렸다. 기욤의 보고는 동독 내무부장관 에리히 밀케를 거쳐 동독 최고 권력자 에리히 호네커에게도 전달됐다. 기욤을 당장 빼내와야 했지만 호네커는 그러지 않았다.

그 목적은 브란트의 정치적 몰락이었다. '동방정책'을 추진한 브란트의 대(對)동독 정책 기조는 '유화'(宥和)였으나 동독 주민을 위해 대립해야 할 때는 대립했다. 이 때문에 브란트에 대한 동독인들의 신뢰는 동독 권력층 그 누구보다도 높았다. 이를 두려워한 호네커가 기욤이 적발되도록 방치함으로써 브란트에게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고 했다는 것이다.('얄타에서 베를린까지', 윌리엄 스마이저)

문재인 정권 때 '기욤 간첩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경우 어떻게 됐을까? 남한 방첩기관은 남한 정부에서 암약하는 거물 간첩을 체포할 수 있었을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드러나는 사실은 이런 물음을 우문(愚問)으로 만든다.

민주노총 핵심 간부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사실이 지난달 언론에 공개됐다. 국정원은 그 사실을 2017년에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 수사가 이뤄진 것은 올해이다. 이렇게 수사가 6년이나 미뤄진 것은 문 정권 국정원의 고위 간부들의 '방해' 때문이라는 게 전직 안보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남북 관계 악화를 이유로 수사 개시를 결재하지 않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수사를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역시 지난달 언론에 공개된 창원·제주의 '간첩단' 의혹 사건도 국정원이 2018~2019년 사이 물증을 다수 확보하고 있었으나 윗선에서 수사를 막았다고 한다.

문 정권 때의 간첩 적발 실적은 이런 증언을 신뢰하게 한다. 자유민주연구원(원장 유동렬)에 따르면 간첩 적발 건수는 2011~2017년 26건이었으나 2017~2020년에는 3건으로 급감했다. 이마저도 박근혜 정부 때 수사하던 사건들이라고 한다. 간첩이 없어서 안 잡은 것인가? 문 정권은 5년 내내 굴종적 대북 유화책으로 일관했다. 간첩이 암약할 공간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넓었다고 봐야 한다. 간첩이 있었지만 안 잡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 정권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해 내년부터 경찰에 넘기기로 한 것은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국내 정치 개입 가능성 완전 차단'을 그 이유로 들었지만 간첩 수사의 '합법적' 차단이 숨은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대공수사권 박탈은 국정원이 축적해 놓은 간첩 수사 노하우의 매몰 처리라는 점에서, 경찰이 국정원 수준의 대공 수사 능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경찰은 해외 정보망이 없어 제3국을 통해 국내로 잠입하는 새로운 트렌드에 무대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런 추론 역시 합리적이다. 문 정권은 이 나라를 '간첩 천국'으로 만들었고, 정권이 바뀌어도 간첩이 활개치도록 기획했다는 의심도 그래서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