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적'만 바랄 것인가

입력 2022-11-23 18:30:00 수정 2022-11-23 19:08:10

최두성 경북부장
최두성 경북부장

얼마 전 경북 봉화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에서 '기적'을 목격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구조 골든타임 72시간이 훌쩍 지났고 생사 확인을 위한 구조대의 시추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 깊은 절망이 사고(思考)를 지배해 가고 있을 때, 두 광부는 살아 돌아왔다.

지하 190m 갱도에 갇힌 두 광부는 커피믹스로 허기를 때우고 비닐로 엄습한 추위를 막아내며 구조를 기다렸다. 때로는 괭이로 직접 탈출로를 파내기도 했다.

그렇게 버틴 그들이 구조대와 만난 건 221시간이 지난 뒤였다. 두 광부의 생환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 분명했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흥분과 기쁨이 그간의 고통을 잊히게 할 때쯤, 생환 광부 박정하 씨는 기적을 일군 '영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자신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매몰 사고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병실을 찾아온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에게 옷에 흙 한 줌 묻히지 않는 공무원의 탄광 안전점검 행태를 개선해 달라고 했다. 광산 내 열악한 작업환경,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 제거에 힘을 써 달라는 요청도 빼놓지 않았다.

기적을 바라지 말고 기적이 일어나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힘 있는 일갈이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주변엔 여전히 허술하고 미흡한 안전망, 시스템으로 절망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터는 물론이고, 일상 공간에서조차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무수한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1월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3월 울진·삼척 산불, 8월 서울 강남역 폭우 침수, 9월 포항 태풍 침수와 대전 유통시설 화재, 10월 평택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 이태원 핼러윈 대참사, 이달엔 열차 탈선 사고 등….

허술한 안전망 틈 때문에 발생한 국민 희생은 국가의 무한책임이다. 사후 약방문 격 처방으로는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158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는 17년 전 유사한 끔찍한 사고를 겪고도 교훈 삼지 않은 것이 한 원인이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에서 가요 콘서트장으로 몰린 1만2천여 명의 관객이 뒤엉키면서 일부 구간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1명이 사망하고 162명이 다쳤다.

이를 계기로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이 처음 만들어졌고, 경사진 곳에 과도한 인파가 진입하는 것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는 매뉴얼에 포함됐다. 하지만 '주최 있는 행사'로 한정하면서 이태원 참사에선 예방적 기능은커녕 무용지물이 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빌미로 되레 '책임'에서 발을 빼려 한다.

안타까운 희생이 생기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의 허언을 들어온 것도 여러 해다. 꼼꼼하지 못했고, 땜질에 그친 경우가 태반이었다.

모든 사건 사고에서 100%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국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라면, 대책은 상상 너머에 있어야 한다. 정부, 지자체, 정치권이 제 소임은 다하지 않은 채 국민 스스로가 기적을 일궈 내기를 바라는 건 직무 유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생환 광부에게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줬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사고가 발생한 데 사과드리며 좀 더 일찍 구조하지 못한 점,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글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