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할인매장 잇따라 출점…포장·손질 비용 아껴 저렴한 값에 물건 제공
같은 값에 용량·사은품 더 제공하는 상품 불티…대용량 상품 구매해 여럿이 나누기도
서예진 씨(35)는 지난 10일 오후 친정 엄마와 장 보러 다녀왔다. 그는 지난여름부터 장 볼 때면 꼭 친정 엄마에게 연락해 함께 한다. 이들 모녀가 장을 보러 가는 곳은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다. 치솟는 물가에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한 대용량 제품을 사서 두 가정이 나눠 쓰는 게 합리적 소비라는 생각에서다. 모녀는 프리미엄 계란 40개를 1만4천원대에 구매해서 나눴다.
서 씨는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다달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걸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가격을 깎아주진 않으니 온라인에서 최저가 상품을 구매하거나 친정 식구들과 공동구매 식으로 양 많은 걸 사서 나누는 '짠테크'(짠돌이+재테크)라도 해야 살림에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같은 가격이라면 더 양이 많거나, 사은품을 제공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체감하는 부담이라도 덜어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불황형 소비 확산에 창고형 할인 매장 '호시절'
이처럼 경기 위축으로 '불황형 소비'가 확산하면서 대용량 상품을 판매하는 창고형 할인 매장이 소비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창고형 할인 매장은 일반 생필품은 물론, 고기·생선 같은 신선식품과 초밥, 중국요리 같은 조리 식품까지 기존 대형 마트보다 대용량으로 판매해 가격을 낮춘다.
대형 마트에서는 400g 내외 중량으로 포장해 판매하는 소고기를 1㎏이나 3㎏ 단위 대용량으로 포장해 판매하고, 손질하지 않은 원물 그대로의 연어회 덩어리를 파는 식이다. 포장재 비용과 손질 비용 등을 아껴 단위 용량당 가격이 더 저렴한 물건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내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콜라로 예를 들면 일반 대형 마트는 일반 콜라, 제로 콜라, 라이트 콜라 등 종류별로 갖추는 데다 각각 500㎖, 1.2ℓ 등 용량별로도 상품을 준비한다. 이에 비해 창고형 할인 매장은 구색을 10분의 1 수준으로 단순화하는 대신 대량 구매로 매입가를 낮춰버린다"면서 "게다가 별도 진열 없이 팔레트 채로 올려두는 식이라 비용 절감이 가능해 소비자가 더 저렴한 제품을 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매출 현황을 살펴봐도 창고형 할인 매장이 고물가 시대에 짠테크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간 대구를 포함해 영남권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커피차 종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7%나 매출이 늘었다. 라면은 16.4%, 샴푸·린스 12.1%, 화장지 8.8% 등 상대적으로 유통기한 구애가 적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대용량 상품이 인기였다.
치솟는 물가에 창고형 할인 매장 수요가 늘면서 유통업체들도 사업 재편을 통해 수요 흡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먼저 이마트는 창고형 할인 매장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간판을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으로 바꾸고 유료 멤버십을 도입하기로 했다. 도매, 대량, 대규모를 의미하는 '홀세일'을 브랜드명에 담아 창고형 할인점 본연의 경쟁력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 30개 점까지 출점을 이어간다.
롯데마트도 서울에서 2개 점만 운영하던 창고형 할인 매장 빅마켓을 '맥스'로 이름을 바꾸고 공격적인 출점에 나서기로 했다. 내년까지 전국 20개 점포 개점이 목표다. 롯데마트는 맥스에서만 취급하는 단독 상품 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해 고객을 불러 모은다는 구상이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상품 수가 3천개 수준에 불과한 창고형 할인 매장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주류 전문매장인 보틀벙커, 가전매장인 하이마트 등 킬러 매장과 함께 출점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글로벌 창고형 할인 매장인 코스트코는 이커머스로 사업을 확장했다. 코스트코는 지난 5월 처음으로 새벽 배송을 시작했다. 배송 가능 품목이 한정돼 있지만, 그간 오프라인만 강화해 온 코스트코에서 눈에 띄는 변화다.

◆고물가에 제조업체·편의점 등으로 짠테크 확산
소비자 수요 변화에 발맞춘 대용량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8월 500㎖ 대용량 '레쓰비 그란데 바닐라블랙'을 출시했다. ㎖당 가격이 대표 캔커피 제품인 레쓰비의 70% 수준이다. 카페 프랜차이즈 감성커피는 대용량 1ℓ 보틀 음료 6종을 출시했다.
주류업계에서도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각각 카스 2.0ℓ, 테라 1.9ℓ 페트를 내놓았다. 용량은 늘렸지만, 기존 제품보다 ㎖당 가격은 6~12% 저렴하게 책정했다.
소비자들의 근거리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편의점도 변화 흐름에 가세했다. 이마트24는 올해 초부터 대용량 휴지와 세제 등의 구성을 늘렸다. 통상 작은 면적에 다양한 상품을 갖춰야 하는 편의점은 대용량 상품을 배치하는 게 손해지만 불황이 관행을 바꿨다.
반응은 즉각적이다.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이마트24의 대용량 생필품 매출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1+1, 2+1 등 덤 증정 행사 음료 상품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77% 신장했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 패턴이 가성비를 앞세운 대용량 생필품과 덤 증정 행사 상품 구매로 이어진 것이다.
대용량 상품의 인기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컬리가 지난 7~9월 마켓컬리에서 판매한 대용량 상품을 집계한 결과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7배 늘었다. 볶음밥, 만두 등 간편식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은 유제품, 채소류의 대용량 판매량은 2배가량 늘었다.
특히 김치만두 상품군은 385g 소용량 상품은 소폭 하락했지만, 1.05㎏ 대용량 상품은 판매량이 10배 폭증했다. 1ℓ가 넘는 대용량 샴푸와 트리트먼트 판매량도 6배 늘었고, 바디케어 대용량 상품 판매량은 2배 증가했다.
컬리 커머스 측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물가 상승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객들이 쇼핑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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