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한다. 정치의 집 역시 언어이고, 말이 사라지면 정치도 사라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면, 오염된 말의 홍수로 오히려 정치가 괴멸될 판이다. 날마다 사건이 사건을 덮고, 뉴스가 뉴스를 덮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에서 비롯된 사태가 블랙홀처럼 모든 정치를 빨아들이고 있다. 신냉전과 대불황의 쓰나미가 산처럼 밀려오는데 정치가 이 지경이다.
'뉴욕 발언'은 아무리 들어봐도 똑똑히 알 수 없다. 그런데 MBC는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아서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동맹을 비하하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음성 판독 전문가인 성원용 서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자막에 따라 듣는다고 한다. 눈은 리얼리스트이지만 귀는 믿고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몬더그린(Mondegreen) 효과'이다. 그는 MBC의 보도를 '데이터 변조'로 보았다.
MBC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 말에도 없는 '미국'을 '국회' 앞에 붙여, 특정 방향으로 사고를 유도했다. 해석은 언론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저널리즘의 생명이다. '사실'과 다른 보도는 그저 싸구려 선동일 뿐이다. 이것까지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할 수 없다. 국민을 오도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MBC는 이미 2008년 잘못된 광우병 보도로 나라를 큰 혼란에 몰아넣은 전력이 있다. 당시 'PD수첩'의 작가 김은희는 이메일에 "어찌나 광적으로 일했던지, 총선 직후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라서 더 그랬나 봐요"라고 썼다. 2020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 유착도 날조된 기획 보도였다. 공영방송인 MBC가 국민의 세금으로 왜 이런 일을 하나.
물론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문제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소소한 문제로 국정과 민생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뼈아프게 각성하고, 주의를 거듭해도 부족하다.
대통령실의 미숙함은 언제쯤 나아지나. '뉴욕 발언' 같은 문제는 신속 대응이 생명이다. 뉴스가 빛의 속도로 지구를 도는 시대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13시간 만에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 사이 억측이 난무하고, 침묵은 묵시적 인정으로 이해되었다. 대통령 일정이 빡빡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중한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바로 진실을 묻고, 신속한 대응을 진언할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이 문제는 사태 초기에 대통령이 사실을 밝히고, 가볍게 사과하는 수준에서 끝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국면, 말 그대로 생사를 건 '전쟁'에 돌입했다. 야당은 총공세에 나서,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욕하지 않았느냐.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대통령을 지명하며 포문을 열었다. 국회 연설에서는 "근거 없는 시행령 통치는 삼권분립 위반이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최고 수위의 엄포이다. 민주당은 곧바로 한 장관을 검찰에 고소했다. 광화문과 전국에서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외치는 '촛불행동'이 시위에 나섰다.
정부로서도 묵과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MBC 보도 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24%로 주저앉았다. 국가 통치의 위급 사태이고, 제2의 광우병 사태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9월 28일 감사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서면조사를 요청했다. 이재명 대표가 혐의를 받고 있는 불법 사건에 대해서도 강력히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대표는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안정'을 강조하고, 내부를 흔드는 세력에 대해 경계를 표했다. 협치를 운위하기엔 늦었고,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정부에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뒤 문재인 정부가 어떠했나. 지금으로서는 '자유'를 모토로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대통령을 도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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