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물 들어왔는데 노를 빼앗나?

입력 2022-08-31 19:43:52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상인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상인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완전 망쳐놨지."

며칠 전 만난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구 방문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윤 대통령과 함께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들이 총출동하고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재계 주요 인사들까지 자리한 빅 이벤트의 의미가 완전히 묻혀 버렸다는 것이다. 26일은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가 부당하다"며 이준석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받아들인 법원 결정이 나온 날이었다.

정부는 이날 윤 대통령 주재로 대구 성서공단 아진에스텍에서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었다. '자유의 신장'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새 정부는 규제 혁파를 간판 정책으로 삼았는데 이 간판 정책 시행을 위한 첫 회의를 대구 성서공단에서 개최한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943건의 규제 혁신 과제 중 194건을 고쳤을 정도로 규제 개혁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2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는 각종 개발사업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불려온 환경영향평가 규제까지 상당 부분 손보겠다는 계획까지 나왔다.

나라 전체로 봤을 때 이날은 규제 개혁에 대한 윤 정부의 강한 의지를 읽은 기회였고 대구경북(TK)으로서는 지역 현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을 촉구한 날이었다. 대통령 중심제, 그리고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중앙집권형 국가인 대한민국 체제에서 대통령의 마음을 잡아채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지역 현안 해결의 지름길은 없기 때문이다.

대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추진했던 달성 위천국가산업단지 추진 계획이 낙동강 오염 가능성을 제기한 부산경남지역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는 등 오랫동안 '전국 유일의 국가산업단지 부재 지역'이라는 설움을 겪어 왔다. 그랬던 대구가 간절한 염원이었던 국가산단 시대를 연 것은 TK의 압도적 지지를 통해 당선됐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었다.

대구국가산단을 공약했던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008년 3월 17일, 당시 김범일 대구시장과 함께 대통령 전용 헬기를 타고 낙동강 유역 등을 공중 답사한 뒤 대구국가산업단지 조기 지정을 관계 부처에 전격 지시했다.

부산경남 지역의 반발을 빌미로 대구국가산단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꿈쩍도 하지 않던 중앙정부 관련 부처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추진 작업을 본격화, 그 이듬해 9월 28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일원 854만8천㎡를 국가산단으로 지정·고시했다. '산업 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옛 산업기지개발촉진법)에 따라 국가산단 지정·육성 제도가 생겨난 지 36년 만이었고, 당시 기준으로 전국에 이미 35곳의 국가산단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대구만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산단에 대한 갈증이 풀린 날이었다.

2013년 6월 기공식을 가진 대구국가산단은 대구 달성군을 저출산 시대 전국적으로 찾기 힘들어진 상주인구 증가지역으로 바꾸는 등 상전벽해시킨 동시에 대구 경제도 도약시켰다. 국가산단의 위력을 잘 아는 대구시는 지난 26일 윤 대통령의 대구 방문 때 내년이면 용지 공급이 끝나는 대구국가산단 상황을 고려, 제2 국가산단 조성을 요청했다.

위천국가산단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TK는 정치의 위력을 잘 안다. 그러나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행태를 보이는 전임 당 대표, 그리고 지휘 능력을 의심받고 있는 일부 대통령 측근 의원들의 모습은 여당발 정치 실종 상태를 부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물이 들어왔는데 믿었던 사람들이 노를 빼앗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