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규의 행복학교] 삶의 결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입력 2022-08-19 13:24:00 수정 2022-08-19 18:46:42

관계서 편안함 느낄 때 '결' 같다 느껴
결 다른 사람 피하기보단 숨겨진 교훈 찾아야

최경규 심리상담가
최경규 심리상담가

결이라면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정도로 우리나라 국어사전은 표현하고 있다. 결이라는 말이 커피처럼 흔한 단어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보다 진한 각자의 향을 가지는 것이 바로 사람의 결이다. 헤어짐의 아픔을 수차례 겪은 한 배우가 "더이상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살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인생의 굴곡을 수없이 겪으며 많은 사람들 또한 만나 보았을 그녀, 남다른 안목도 있었으리라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헤어짐의 고통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물도, 사회적 지위도 아니라 바로 '결'이었음을 이제야 아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 미국인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 한(恨)에 대하여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외국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우리말이 있다면, 한(恨) 이외에도 화병(火病)이 있다. 비단 한국인들에게만 존재하는 듯한 화병(스트레스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발생하는 일종의 신경성 신체화 장애를 일컫는 말)과 같은 뜨거운 감자인 화와 같이, 결 또한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결, 어떻게 보면 영어로 Chemistry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흔히 결이 같은 사람을 두고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영어에서 궁합이 잘 맞는다는 말을 "We have good chemistry"라 하는 것처럼 화학적 반응이 잘 맞는다는 말,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될 듯하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이 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에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창 넓은 찻집에서 따스한 차 한잔이면 행복하고, 말을 전하지 않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일렁이는 눈빛만으로도 아픔이 전달되고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결이 비슷한 사람이다.

◆이직사유,사람들과의 관계성 때문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나 비슷한 MBTI 유형의 사람만을 만난다면 당신의 사고를 쉽게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기에 결이 비슷한 사람만을 선택적으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는가?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지울 수 없는 이질감으로부터 우리의 감정은 안전한가?

직장이란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이직 사유, 부동의 1위는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성 때문이었다. 결이 잘 맞는 사람들과의 우정과 의리로 직장을 다니다가, 결이 맞지 않는 몇몇 사람들과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사표라는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기도 한다. 직장처럼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선택은 매우 간단하다.안보거나 피하거나.

우리의 마음은 금세 평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이나 어느 기간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면 대면조차 힘든 시간, 고통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온다. 그렇다면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평온을 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그들과 멀어지는 것일 테지만 그러면 결국에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결과까지 도출될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 과거, 나름대로 그들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내 소심한 노하우는 그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이기거나, 내면의 감정 우월선상에 있는 것으로 위로 삼으려 했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들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선택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나와 맞거나 맞지 않는 것으로 보려 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삶이라는 긴 소설을 볼 때 누구든 영원히 결이 맞을 수도 없으며, 또한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도 배울 점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다.

◆거시적으로 삶을 내려다 보아야

어느새 30년 전의 일이다. 결혼 후 주택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주차문제로 이웃과의 언쟁이 오갈 수 있다. 그 당시 앞집에는 트럭을 운전하시는 50대 아저씨가 살았고, 좁은 골목에 항상 주차하였다. 나름 붙여 놓아 충분히 나갈 것으로 생각했던지, 일이 있어 늦게라도 들어오는 날은 언제나 그는 골목 입구에 주차하였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 차를 빼달라 하면 운전도 못 한다면서 핀잔을 주는 그와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었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의 대표적 인물로 나는 그를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언쟁을 멈출 수 있었다. 나는 침묵하였다. 그의 매너 없는 태도에 그때마다 반응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답하였다. 그 침묵에 오히려 그는 반응하였고, 반면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그는 이사하였고, 그 무렵, 내 운전 솜씨는 눈을 감고도 할 정도로 늘었다.

결이 맞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노하우, 거시적으로 삶을 내려다보면 오늘의 스트레스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를 만난 이유 또한 반드시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 덕분에 '후진 주차의 신'이 되었다.

삶이라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고 지금의 고통을 '지나가는 바람'이라 해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제와 또 다른 오늘을 맞을 수 있다. 삶의 결이 다른 사람과의 시간을 피할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그 안에 숨겨진 교훈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신이 우리에게 건넨 행복이라는 선물상자를 열기도 전에 시련이라 포장된 겉모습에 놀라 겁만 먹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시련을 같은 방식으로 풀지 모른다. 데자뷰와 같은 헤어짐을 겪지 않으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복기(復碁)하는 자세로 자신의 결을 보아야 한다.

나의 결을 아는 것, 그것이 선행되어야 다가오는 인연의 결 또한 잘 알 수 있다. 결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경규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