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물'이 '칼'로 변하면 안된다

입력 2022-08-16 14:17:24 수정 2022-08-16 15:15:54

엄재진 기자경북부
엄재진 기자경북부

태풍 루사 때 한 공학자는 '물은 칼날과 같다'라고 말했다. 눈으로 보기에 잔잔한 물이 칼날처럼 변하는 성질이 있다는 말이다. 이 성질은 거대한 콘크리트 댐도 깎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는 것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말이 떠오른 것은 '물'이 자칫 '칼'로 변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기 때문이다. 공공재인 '물'을 둘러싸고 '대구와 구미의 갈등' '대구와 안동의 상생'이 혼재하면서 자칫 '칼'로 변해 서로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대구 시민에게 물은 30년 세월 최대 숙원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고 이후 9차례나 수질오염 사고를 겪으면서 물 문제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 수돗물 독극물 검출 논란으로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런 물 트라우마는 지난 4월 문재인 정부 막바지, 임기 1개월여 남은 정부가 주도해 구미 해평취수장 물을 대구와 경북이 함께 이용하는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을 서둘러 체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대구시와 구미시의 물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민선 8기 단체장이 바뀌면서 지난 정부와 단체장들이 체결한 협정에서 좀 더 손을 보고, 좀 더 상생할 수 있는 내용이 없는지를 따지는 동안 '물'은 순식간에 성난 홍수로 변해 '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권기창 안동시장이 공약한 '낙동강 유역 광역 상수원 공급 체계 시범 구축 사업'과 홍준표 대구시장의 안동댐·임하댐 물을 활용하는 대구취수원 다변화 공약인 '맑은 물 하이웨이'가 새로운 '물 상생'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홍 시장과 권 시장은 최근 만남을 통해 '물 상생'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다졌다. 대구의 물 문제 해결책으로 '안동댐·임하댐' 물 사용이 공식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게다가 통합신공항 배후 산업단지를 안동에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물 문제 해결 단초를 제공한 권기창 안동시장과 안동 시민들께 감사한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안동 지역민들은 일단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안동댐 대구취수원 문제는 지난 2009년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안동 지역 정치인들도, 낙동강 하류 지역 지자체들도 반대하면서 무산됐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분명 다르다. 그때는 빈손이었고, 지금은 지역에 도움이 될 무언가가 보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단체장의 철학과 의지도 다르다.

하지만, 물 부족을 겪을 하류 지역 지자체의 반발을 비롯해 경북 지역의 물 상생은 어찌할 것인지, 과연 정부가 추진하는 '낙동강 유역 안전한 물 공급 체계 구축 사업'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등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대구 시민의 물 문제는 민선 8기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안동댐·임하댐 물 공급을 통해 대구 시민들의 물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다고 정부와 지자체가 체결해 놓은 협정을 감정적으로 깨 버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 이상 대구취수원과 관련, 구미시와 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물'이 '칼'로 변하는 것은 끝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