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대기업 오게 만드는 여건 조성이 먼저다

입력 2022-06-14 19:30:00 수정 2022-06-14 19:31:44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인(IN) 서울' 공대 출신자들이 '취업 남방한계선'으로 꼽는 지역은 경기도 기흥·판교 라인이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 사이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지도에서 경기도 아래로는 아무리 좋은 기업이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수도권 청년 구직자 대상 '지방 근무 인식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10명 중 7명은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건이 좋아도 회사가 지방에 있으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응답이다.

서울에서 어느 정도 먼 지역까지 근무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선 '수원·용인'이 64.1%로 가장 많았고, '평택·충주'에선 31.9%로 반토막 났다. 남부권으로 가면 확 떨어진다. '세종·대전'이 그나마 25.9%를 유지했지만, '대구·전주'로 내려오면 14.9%로 급감했다.

심지어 기업 규모가 작아도 수도권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지방 4대 그룹 소속 기업'(26.6%)보다 '수도권 일반 대기업'(73.4%)에 입사하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지방 일반 대기업'(49.8%)은 '수도권 중견기업'(50.2%)에도 밀렸다.

지방에 거주하는 입장에선 수도권 구직자들이 참으로 배부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이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취업 생태계 모습이다.

실제로 국내 재계 서열 상위 40대 그룹(대기업집단) 계열사 1천700여 개 중 52.1%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경기(18.8%), 인천(3.2%)을 포함할 경우 수도권에 위치한 대기업 소속 회사의 비율은 무려 74.1%다. 비수도권 중에선 충남(3.8%), 경북(2.9%), 전남(2.4%)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는 대기업 계열사 본사 비중이 0.8%로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꼴찌였다.

그러다 보니 취업하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청년들이 이곳에 쏠린다. 지방의 인재들도 이 대열에 가세한다. 지난해 감사원 자료에 의하면 지방대학을 나와 수도권에 취업한 비율이 39.5%에 이른다. 결국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일자리 불균형은 '지방 소멸'로 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지방으로 못 내려오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정적인 인재 확보 때문이다. 미래 산업은 혁신적인 연구개발(R&D) 역량이 명운을 좌우한다. 지방 땅값이 아무리 싸고 인센티브 혜택이 많아도 주저하게 된다. SK그룹이 2027년까지 1조 원을 투입해 친환경 기술 연구개발 인력 3천여 명이 근무하는 'SK그린테크노캠퍼스'를 경기도 부천에 설립하고, 두산도 용인에 첨단 수소 기술 연구시설을 건립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대기업들이 1천조 원이라는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에 맞춰 대구경북도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방대학에 기업 수요에 맞는 특성화 기술 인재 육성을 정책화하지 않으면 대기업 지방 분산은 요원하다.

이와 함께 지방정부는 이전하는 대기업 구성원이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자랑하는 교육과 문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수도권 못지않은 교육력 높은 자사고, 특목고를 만들어 대기업 자녀를 위한 특별 정원을 배려하자.

휴일엔 이들이 지역 곳곳의 역사 유산을 탐방하도록 발길을 유도하자. 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연, 전시 등 문화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이주 기업 가족들에겐 무료로 제공하자. 특혜라고 말하지 말자. 결국은 도시 내재 가치를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