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극기와 나라 사랑

입력 2022-06-16 11:38:19 수정 2022-06-16 16:09:06

김진현 대구 성서중학교 교감
김진현 대구 성서중학교 교감

6월은 현충일과 6・25전쟁 기념일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정한 법정공휴일이다. 태극기를 조기 게양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희생을 기리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날이다.

올해 제67회 현충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정부가 바뀌고 처음 맞이하는 현충일에 윤석열 대통령은 "제복 입은 영웅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이긴 했지만, 비 탓인지 우리 지역 아파트에 태극기를 단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참으로 마음에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태극기함을 열고 태극기를 다는 내 마음이 무겁고 콧날이 시큰함은 무엇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태극기…. 아마 나도 모르게 먹먹한 가슴 뒤편에 호국 영웅들이 떠올랐던 것 같다.

1970년대 국민(초등)학교 시절, 오후 6시쯤 국기 하강식이 매일 이뤄졌다. 애국가가 울리면 일제히 일어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하면서 애국가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저절로 숙연해지며 경건한 마음으로 태극기에 예를 다했다. 태극기를 다는 기념일에는 노래와 기념일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태극기를 다는 것이 당연시됐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기념일 또는 시사적인 의미를 가진 주제를 다루는 계기 교육이 형식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운영요원으로 참가했을 때 일이다.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한 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태극기가 올라갈 때 그 벅찬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어땠는가. 온 나라가 태극기 물결로 휩싸였다. 응원 도구로 태극기는 빠지지 않았다. 대형 스크린은 물론 관중들의 카드 섹션에서도 태극기가 휘날렸고, 사람들은 태극 무늬를 머리에 두르며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고 자랑스러워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태극기는 애국심의 발로였고 표상이었다. 참으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태극기가 위대해 보였다. 우리 어린 시절 태극기를 신성시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활 가까이 친근하게 다가와 있다. 요즘 태극기는 집회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얼마 전, 태극기와 관련된 사연이 TV 방송에서 소개됐다.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한 짐 란츠 씨가 1951년 봄, 대구에서 태극기를 준 한국 해병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 해병대 소속으로 장진호 전투 등에 참전한 란츠 씨는 한국 해병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친절한 인상에 영어를 잘하는 해병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물받은 태극기를 우정의 징표로 71년간 깨끗하게 간직해 오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이 노병이 받은 태극기는 전쟁 중 피어난 아름다운 전우애의 증표였다. 태극기는 그런 것이다.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이다. 따라서 계기 교육은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형식적인 계기 교육이 아닌 몸으로 체득하는 실효성 있는 계기 교육이 필요하다. 태극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도록 계기 교육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일깨우고 태극기의 소중함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나라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