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18> 여행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입력 2022-05-12 10:14:15 수정 2022-05-14 08:03:55

신비 용학도서관 사서

신비 용학도서관 사서

3년간 근무한 어린이자료실은 항상 정신없이 바쁜 곳이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아이들과 추억을 쌓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매년 방학 기간에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다. 바로 독서교실이다.

독서교실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마다 아이들을 상대로 사서들이 번갈아 가며 4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학교 선생님도 아닌 사서가 독서교실을 맡아 수업을 꾸려나가는 건 꽤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독서교실 담당자가 되면 아이들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다섯 번이 넘는 독서교실을 진행했지만 매번 긴장이 된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보람이 더 크다.

그간 진행했던 독서교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9년 여름방학 때 있었다. 매번 1, 2학년 독서교실만 진행하다 처음으로 맡는 3, 4학년 독서교실이었다. 한두 살 차이지만 여행 경험이 조금이라도 더 많지 않을까 싶어 여행을 주제로 잡았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던 책은 '안녕, 나는 해외여행을 떠나'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해외여행 가이드북이다. 환전의 정의, 여권을 만드는 방법, 기내 반입이 가능한 물품 설명까지 해외여행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하던 때 아이들이 해외여행을 생각보다 많이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돼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5명의 아이들 중 다수가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러시아에서 살다 온 아이도 있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해외여행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한 아이는 어릴 때 여권을 만들어, 아직도 여권에 유아시절의 사진이 붙어있다며 웃었다. 공항에 장난감 총을 들고 갔다가 보안요원에게 압수당해, 울면서 여행을 시작했다던 아이도 있었다.

처음 여행이라는 주제를 잡았을 때는 어떻게 재미있고 알찬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러나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만난 새로운 문화와 음식들, 관광 명소에 대해 신이 나 떠들 때, 그저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 시간 옆 강의실에서 찾아와 조용히 해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기가 대단했다.

나흘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많은 추억이 쌓였다. 정이 들어서 사서 선생님이 진행하지 않으면 다음번 독서교실에 오지 않겠다던 친구,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독서교실에 잇달아 참여한 친구도 기억이 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도서관과 사서가 더 가깝게 느껴졌길 바라며, 다음 독서교실에도 수다쟁이 친구들과 함께하길 기대한다.

신비 용학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