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국민의힘의 저질 동업자 의식

입력 2022-04-25 19:39:59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실행되면 정말 힘 있는 권력자·정치인·고위공직자만 살맛 나는 세상이 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힘없는 약자인 국민이 안 게 될 것." "민주당이 기어이 국민 독박, 죄인 대박, 검수완박 강행 처리 마수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의원 총회와 19일 원내 대책 회의에서 각각 한 말이다. 이 말대로라면 권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검수단박'(검찰 수사권 단계적 박탈) 중재안을 거부해야 했다. 중재안은 시행 시기만 조금 늦췄을 뿐 더불어민주당 원안의 핵심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권 원내대표는 중재안에 합의했다.

중재안대로 입법이 되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에 남겨진 6대 범죄 수사권 중 부패·경제만 남기고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등 4개는 경찰로 넘어간다. 그중 핵심은 공직자와 선거 범죄다. 나머지 2개는 끼워 넣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속셈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문재인 정권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의 차단이다.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20명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전언은 그 다급성을 잘 말해 준다.

국민의힘도 이를 잘 안다. 그렇다면 중재안의 '야바위성'을 폭로하고 단호히 거부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검찰 수사권에서 선거·공직자를 빼자 돌변했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은 할 수 있다. 저질 정치집단의 동업자 의식! "너와 내가 짜고 너와 나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막자".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만 모였다면 모를까 어떤 정권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이런 신구 권력의 야합은 국민 전체의 피해로 확대된다. 경찰에 넘겨진 4대 범죄 수사는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요구한다. 지금 경찰에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은 4대 범죄 수사의 이관으로 경찰의 수사 업무는 더욱 늘어난다. 수사 지연이나 해태(懈怠)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1년 6개월 뒤 '중대범죄수사청'을 설립해서 검찰 수사권 폐지를 보완한다는 '계획'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시간표대로 중수청이 설립될지 의문이고 설립 이후 수사 역량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미지수다.

검수단박은 이렇게 여야가 다수 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들은 검찰 수사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활개 치겠다는 선언이다.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국민의힘은 뒤늦게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검토 카드를 꺼냈다. 그 검은 속을 이미 들킨 마당에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쓰겠다"며 여당의 검수완박 폭주에 침묵해 왔다. 이 때문에 검수단박 야합은 '윤핵관'인 권 원내대표가 앞장선 만큼 윤 당선인과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됐다. 윤 당선인은 25일 대변인을 통해 "여야가 합의한 중재안에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 삶을 지키는 정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 주기를 당부한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너무 소극적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며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