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황영은] 완벽한 오해

입력 2025-04-24 13:09:22 수정 2025-04-24 15:05:38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우리가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상식이나 지식이 100% 사실일까?

살아가면서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내용이 오류란 걸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가령 공생인 줄로만 알았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말이다. 악어새는 식물의 열매나 씨앗을 먹고사는 초식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니까 악어새는 육식동물인 악어의 이빨에 낀 고기를 먹을 수 없다. 또 악어는 평생토록 3천개 이상의 이빨이 빠졌다가 나기를 반복하는데, 이빨들이 아주 빽빽하게 올라와서 찌꺼기가 거의 끼지 않는다. 악어의 입속 청소를 굳이 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둘이 합동해서 살아간다고 믿었을까? 진실은 이렇다. 고대 그리스의 한 역사가가 여행하다가 우연히 악어 입속을 들락거리는 악어새를 목격했는데, 그 짧은 기록 때문에 상식으로 굳어져서 입을 타고 전해져왔다. 착각으로부터 시작한 사실은 결국 오랜 시간을 따라 내려와 잘못된 상식으로 정착해 버린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져 화석처럼 뿌리박힌 오해는 좀처럼 바로잡기 힘들다.

우리는 끊임없는 타인과의 접점 속에서 사회생활을 이어나간다. 누구라도 언쟁이나 다툼에 휘말리는 걸 원하지 않으므로 상대에 대해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또 이해의 언어를 구사하려 노력한다. 그렇다 해도 언어란 사람의 마음이나 처지를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전형화된 규격이 아니다. 이해라고 확신했던 소통의 실체가 기실 오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는 순간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통이 일어난다. 타인의 언어는 결국 풀지 못할 암호로 둔갑해버리고, 서로 간의 미묘한 어긋남은 사회생활의 어려움으로 제동을 걸어오게 될 것이다.

일반 상식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오류는 여기서 극명하게 방향을 달리한다. 잘못 알았던 상식은 바로 고쳐서 아로새기면 된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질퍽한 유형의 마음 작용이 개입되면 그 오해란 되돌려놓기 힘들다. 이미 오염 되어 각인을 시작한 이미지는 굳어지는 과정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미지가 누구에게나 좋게 인식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오만이다. 사람과 사람이 섞여 있는 곳에서 삐걱댐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설사 나의 의도를 상대가 완벽히 오해한다손 치더라도 그걸 바꾸고자 억지 부린다면 그 또한 교만일 것이다. 바로잡기 힘든 '완벽한 오해'라면 그냥 두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맡겨두는 일이, 우글대는 포식자로 가득한 생존의 현장에서 살아남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확신이 곧 편견을 만드는 과정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오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만이 결국은 거짓 아닌 진리를 알고 있다. 진실은 얄팍한 말 하나만으로 규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