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경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용어가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그 동맹국들 간의 냉전시대가 도래했다. 이때 핀란드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 외교정책을 채택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핀란드는 소련에 부정적인 출판물 등을 사전 검열하는 등 소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의 군사적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이미 1939년 '겨울 전쟁'을 비롯해 두 차례나 소련의 침공을 받은 터라 이런 외교정책만이 핀란드의 독립과 평화를 유지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핀란드의 사례를 빗대 약소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주권국가로서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중립을 지키는 것을 '핀란드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수의 핀란드인은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이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굴욕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불편해한다.
이런 핀란드가 최근 나토 가입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자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나토가 자신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까지 확장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할 것이다. 이미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이른바 '발트 3국'으로 불리는 국가들도 나토 회원국이며, 또 다른 중립적 외교 노선을 견지했던 스웨덴까지 우크라이나 사태를 기점으로 나토 가입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천340㎞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의 시작 직후 러시아가 핀란드 인근의 북방함대를 강화하고 나토 영토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발트해에 핵을 배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군사적 행동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도 나토 가입을 논의한 것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보복이 그 시작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군사 및 외교 전문가는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의가 벌써부터 발트해 인근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의도 어찌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핀란드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나토 가입을 추진하기 위한 최적기라고 판단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침공으로 러시아에 대한 전 세계적 제재와 반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핀란드의 나토 가입 시도는 자국민들은 물론 국제적 지지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하다. 어차피 러시아의 거센 반발은 당연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국제적 외톨이가 돼 가는 러시아가 엄연한 주권국가인 핀란드의 나토 가입 시도를 꼬투리 잡아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명분도 약하고 실리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의는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더 이상 '핀란드화'의 굴욕을 거부한다는 외교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도 과거 구소련 국가였고 영토적으로도 접해 있어 러시아와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 또한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을 만큼 러시아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스스로 몇 남지 않은 외교적 친구를 등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했던 핀란드마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사실상 또 한 명의 친구를 잃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일부 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 시도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보냄과 동시에 군사적 힘의 우위에 기반한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푸틴의 오판은 러시아를 점점 세계로부터 고립되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러시아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시점에서 나온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의가 향후 러시아의 외교정책과 군사적 행동에 어떠한 변화를 몰고 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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