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조유진] 인당뮤지엄서 마주한 회화의 경계

입력 2025-06-17 10:17:19 수정 2025-06-17 18:30:09

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도심의 주거단지 한복판에 위치한 대구보건대학교의 인당뮤지엄에서 197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을 조명하는 '쉬포르 쉬르파스' 전시를 개최했다. 프랑스 현대미술의 한 챕터를 열었던 작가 13인의 작업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 안에는 회화의 전통적인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실험정신이 가득하다. 앙드레 피에르 아르날, 뱅상 비올레스, 피에르 뷔라글리오, 루이 칸, 마크 드바드, 다니엘 드죄즈, 노엘 돌라, 토니 그랑, 베르나르 피제스, 장 피에스 팽스망, 파트릭 세투르, 앙드레 발랑시, 클로드 비알라 등 이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이름은 낯설게 다가오지만, 그들이 던지는 물음은 꽤 직관적이다.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남부를 중심으로 등장한 미술의 경향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회화란 무엇인가'를 탐구했던 예술운동이다. '버팀'과 '표면'이란 의미를 지닌 쉬포르(Supports)와 쉬르파스(Surfaces)는 캔버스 천과 나무 프레임이 결합한 회화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표현보다는 구조, 의미보다는 과정에 주목했던 그들의 예술적 실천은 회화의 아주 기본적인 언어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분해하고 그 자체를 드러낸다. 화면은 찢기고 구겨지며, 캔버스는 벽을 떠나 바닥과 천장으로 퍼진다. 물질성에 대한 관심, 색채의 서정적 사용, 그리고 회화의 구성을 실험한 이들의 작업은 더 이상 이야기의 창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장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회화의 전통적인 관습과 본질에 대한 질문이자, 회화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의 높이가 달라진다. 늘 벽에 걸려 있던 평면들이 바닥에 펼쳐지고, 머리 위에서 흔들린다. 그것은 관람객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익숙했던 회화의 위치가 이동하면서, 감상은 시각을 넘어서 몸 전체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이번 인당뮤지엄의 전시에서 중요한 건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익숙한 형식에서 벗어난 이 그림들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시는 우리가 미술관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방식들을 되묻게 만든다. 회화는 벽에 걸려 있어야 하는가. 감상은 눈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쉬포르 쉬르파스는 회화의 틀을 해체함과 동시에 관람자의 인식의 틀을 흔든다. 익숙함을 해체하고, 그 틈에서 새로운 시선을 길어 올리는 경험들, 그것은 낯선 만큼 새롭고, 낯선 만큼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