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내전 때인 1995년 7월 11일 세르비아계 군대가 유엔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스레브네니차에 쳐들어왔다. 당시 스레브네니차는 세르비아의 인간 사냥에 쫓겨 피신해 온 무슬림 난민들로 꽉 차 있었다. 이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네덜란드 병사 400명으로 구성된 평화유지군 파견대가 맡고 있었지만 세르비아 군대가 스레브네니차에 진입하자 임무를 포기했다. 이후 나흘에 걸쳐 세르비아 군대는 13세 이상 무슬림 남성 7천400여 명을 살해했다.
이런 과오에 대한 반성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5년 7월 8일 스레브네니차 학살을 '대량 학살 범죄'로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으나 세르비아 편에 선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달 7일과 2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언론 성명'을 채택하려 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0년 11월 20일 유엔 안보리의 북한의 연평도 포격 규탄 성명도 중국의 거부로 무산됐다. 같은 해 7월 9일 천안함 폭침 규탄도 마찬가지다.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 공격을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지만 공격 주체가 북한임을 명시하지 못했다. 중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1개국만 거부하면 안보리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이런 '지배구조'로 인해 '안보리 무용론'은 오래전에 제기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리 무용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2월 25일 안보리는 미국 주도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으나 러시아의 거부로 불발됐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안보리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5일 안보리 화상 연설에서 "대량 학살이 자행된 부차에는 안보리가 보장하는 안보는 없었다"며 "여러분은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면 러시아가 자신에 대한 규탄에 찬성하거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퇴출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규탄 성명은 물론 상임이사국 퇴출도 러시아가 찬성해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한 제2의 안보리라도 만들어야 하나?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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