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첫사랑의 달달한 향기 흩날리는 라일락

입력 2022-04-08 12:20:00 수정 2022-04-09 07:10:34

이상화 선생의 생가에 있는 라일락.
이상화 선생의 생가에 있는 라일락.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를 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1970년대 청춘의 아이콘 청바지와 생맥주, 통기타를 가리키는 '청생통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가수 윤형주가 부른 '우리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라일락 향기가 스며있는 듯 감미로운 멜로디에 낭만적인 가사다. 지금처럼 원예용 꽃과 조경용 나무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 4월 라일락꽃은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상징했다.

라일락은 엷은 보랏빛을 띠는 잘잘한 한자 십(十) 자 모양의 꽃 하나하나가 한 움큼씩 뭉쳐서 피면 황홀하고도 진한 향기를 사방으로 뭉게뭉게 흩뿌린다. 첫사랑의 달달함과 같은 향은 환절기에 코가 막혀도 쉽게 느낄 정도로 강하다. 어릴 적에 농촌에는 봄에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두엄을 들로 내는 시기라 악취가 많이 났다. 우리 마을 마당 너른 집에 라일락 나무가 꽃대를 내밀고 2~3일 지나면 그윽한 향기가 동네 악취를 압도했다. 그 시절 화장품이나 껌과 같은 상품에도 라일락 향이 들어갔다.

달성공원에 있는 라일락.
달성공원에 있는 라일락.

민족시인 이상화 생가 라일락

대구에 오래된 라일락이 적지 않다. 달성공원, 계산성당, 청라언덕의 선교사 사택 정원, 신명여고로 가는 언덕배기 측백나무 생울타리 안쪽, 종로의 T주점, N산부인과 옆 주차장 폐가 등에 있는 라일락의 둥치 둘레는 50㎝ 넘는다. 특히 항일 민족시인인 이상화 선생 생가 자리에는 높이 5m, 둘레 80㎝가 넘는 라일락이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지금 '라일락뜨락1956' 카페 마당에 비스듬히 눕다시피 자라는 '이상화나무'는 줄기가 뒤틀려 있다. 상화 선생이 이곳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서 그런지 나무도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온몸으로 간직한 느낌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대구 만세운동을 논의하고 나라 잃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결의를 다진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이상화나무는 말없이 지켜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라일락이 1880년경에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하니 일본에서 들어온 라일락인지 분단 전에 북한 지역에 자생하는 '토종 라일락' 즉 수수꽃다리인지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100년이 넘도록 대구 도심에서 해마다 봄에 청량한 향기를 선물해온 나무가 새삼 위대하게 보인다.

대구수목원에 있는 수수꽃다리
대구수목원에 있는 수수꽃다리

한반도 토착종 수수꽃다리

한반도에도 라일락과 비슷한 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수수꽃다리다. 원뿔 형태의 꽃차례가 수수이삭과 닮아서 순우리말 수수꽃다리라는 정감어린 이름을 붙였다. 자세히 보면 겉은 붉은 보랏빛이지만 속은 하얀색의 꽃 자체가 예쁘다기보다는 진한 향기가 후각을 일깨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수수꽃다리는 물푸레나뭇과의 낙엽 관목으로 북한 황해도와 평안남도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생한다. 지금은 자생지를 가볼 수 없지만 남북 분단 이전에 옮겨 심은 나무들이나 자손을 대구수목원 등에서 볼 수 있다.

옛 지명 개풍이 고향인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소설 『미망』에 '4월 초파일이 며칠 안 남은 용수산은 한때 온 산을 새빨갛게 물들였던 진달래가 지고 바야흐로 잎이 피어날 시기였다. 그러나 수수꽃다리는 꽃이 한창이어서 그 향기가 숨이 막히게 짙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수꽃다리는 진한 향기가 특징이다.

그러나 수수꽃다리라는 예쁜 이름도 나이든 세대에게는 귀에 설다. 라일락이라고 하면 그제야 "아! 향기 진한 그 꽃"이라고 기억을 되짚는다. 신세대들은 수수꽃다리를 '한국 라일락'이라고 알고 있고 라일락은 서양수수꽃다리라고 부르며 구분한다.

수수꽃다리와 서양수수꽃다리는 생김새가 비슷해 전문가들만이 잎과 꽃 모양을 구별할 정도이니 보통사람으로서는 많이 헷갈린다. 더구나 요즘 공원이나 박물관의 팻말에는 라일락은 거의 볼 수 없고 대부분 수수꽃다리라고 적혀 있어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름을 설명하자면 라일락은 서양수수꽃다리 종류의 나무를 영어권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수수꽃다리는 우리나라 토종 '라일락'의 이름이자 종명(種名)이면서 동시에 속명(屬名)이다. 가수 현인이 부른 번안가요 '베사메무초' 가사의 "리라꽃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에 나오는 '리라(lilas)' 꽃은 라일락을 가리키는 프랑스 말이다.

한 전문가는 "시중에 수수꽃다리라고 부르는 니무의 99% 이상이 라일락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남북 분단 전에 남쪽에서 기른 수수꽃다리는 몇 그루 안 된다"고 말했다.

수수꽃다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다 보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꽃잎이 네 개로 갈라지는데 다섯 개로 갈라지는 꽃부리를 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낳았다. 또 하트 모양 잎을 깨물면 첫사랑의 쓴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라일락의 잎을 따서 씹으면 첫사랑을 모르는 아이도 쓰디쓴 맛에 이내 내뱉게 된다. 소태나무 잎만큼은 아니더라도 쓴 맛이 꽤 오래 간다.

미스킴라일락
미스킴라일락

종류에 따라 꽃피는 시기 달라

수수꽃다리는 라일락과 언뜻 보면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잎과 꽃모양이 다르다고 한다. 라일락은 잎의 길이가 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긴 편이고 수수꽃다리는 길이와 폭이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보통사람 눈에 확연히 구분되는 게 아니다.

수수꽃다리를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이 정향(丁香)혹은 자정향(紫丁香)이다. 우리 옛 문헌에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은 없고 정향이라는 말이 나온다. 책에 나오는 정향은 주로 식자층에서 쓰는 말이고 수수꽃다리는 글을 알지 못하는 민초들이 널리 썼다는 주장과 함께 정향이 향기를 강조한 이름이고 수수꽃다리는 생김새를 강조한 이름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수꽃다리와 비슷한 형제 나무로는 꽃이 흰색이고 수술이 밖으로 올라온 개회나무, 잎 뒷면 주맥에 털이 많은 털개회나무, 새로운 가지에서 꽃대가 올라오는 꽃개회나무가 있다. 이들은 꽃피는 시기가 다르다. 대구에서는 4월 초순에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의 꽃이 피고 5월이 되면 개회나무 종류들이 흰 꽃이 뭉실뭉실 핀다.

개회나무는 벌 같은 곤충들이 많이 찾아든다. 향기가 강하고 꽃대롱이 짧아 꿀샘이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대구에 가로수로 심어진 개회나무도 5월에야 새하얀 꽃을 무더기로 내놓는다.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인 섬개회나무, 흰섬개회나무도 있다.

식물유전자원 소중함 일깨워

우리 땅에서 자라는 토종자원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던 시절 한반도의 토착식물이 해외로 반출돼 대량증식이나 품종개량을 거쳐 상품화된 식물이 여럿이다. 하루백합(daylily)으로 개량된 원추리, 북한이 원산지인 장수만리화, 고급 정원수로 인기 있는 지리산 노각나무, 크리스마스 트리로 각광받는 한라산 구상나무, 미스킴라일락으로 개량된 서울 북한산 털개회나무 등은 모두 외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해외에서 육종된 몇몇 품종은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하며 국내로 되레 역수입되고 있다.

미군정 때 농무성 소속 엘윈 미더(Elwin Meader)라는 식물 육종전문가는 서울의 북한산 백운대 부근의 바위틈에 핀 털개회나무 꽃을 발견해 씨앗을 받아 본국에서 대량증식에 성공, 새 품종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식물채집하고 정리할 때 자신을 도와준 여성 타이피스트의 김씨 성을 붙여 '미스킴라일락(Miss Kim Lilac)'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유럽 라일락보다 키가 작고 향기가 진해 더 멀리 퍼져가는 우량 품종으로 세계 라일락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1970년대부터는 한국에서도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미스킴라일락'이 우리 아파트 화단에서 보라색 꽃이 필 때쯤이면 수수꽃다리 이파리를 씹었을 때처럼 씁쓸하다. 종자 전쟁에서 우리는 '의문의 일패'를 당한 후에야 식물유전자원 관리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잔인한 달'에 짙은 향기

수수꽃다리의 옛 이름 정향나무를 『양화소록』의 「화목구품」에는 배꽃, 살구꽃 목련 등과 함께 7품에 넣어놓고 『화암수록』의 「화목구등품제」에도 7등에 올린 것으로 보아서는 조선시대에는 그다지 소중한 나무로 여기지 않았다. 더욱이 배꽃, 살구꽃을 읊은 시는 많으나 정향을 노래한 시나 언급은 드물다.

생육신 남효온이 남긴 『속동문선』의 「유금강산기」에 "정향의 꽃과 향기를 오랫동안 즐기고자 꽃을 꺾어 말안장에 꽂아두고 면암을 지나 30리를 갔다(折取丁香花揷馬鞍以聞香 過眠岩行將三十里)"는 내용이 나온다.

또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의 저술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2권에는 관서 지방에서 시를 잘 짓기로 이름난 기생 '일지홍(一枝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유득공이 승지 이서구에게 일지홍의 시를 보내달라고 하니 "제게 준 시는 '뜨락의 정향나무 곱기도 하지, 지난해와 같은 모습 꽃을 피우네(可憐庭除丁香樹 花發猶能似昔時)'라고 했는데, 아름다운 시구지요. 일지홍의 시집 한 권이 행장 속에 있었는데 홀연 사라져 버렸으니 몹시 애석합니다"라는 답장에 정향나무가 언급됐다. 선비들이 정향나무를 알고 즐기면서도 시가(詩歌)를 남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점잖은 체면을 구길 만큼 진한 향기 때문인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하략)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1차 세계대전 후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표현했다. 황무지처럼 우리도 4월의 잔인한 상흔이 있다. 민족시인 이상화와 그의 벗인 현진건은 공교롭게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 같은 날 운명했다. 419혁명도 라일락향이 퍼져갈 때 일어났다. 4·16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황무지에서 자랄 만큼 생명력이 강한 라일락이 피는 계절에 새롭고 달콤한 정치가 꽃피기를 기대한다.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