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지급(焦眉之急). 눈썹이 타들어 가는 절박한 위기에 놓여 있다는 뜻을 품은 사자성어다. 흡사 최근 잇따라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을 포함한 산업계가 처한 판국이다.
잇단 중대재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안전 시스템이 여전히 견고하지 못하다는 경고성 메시지다. 특히 생명보다 공정 속도를 우선시해 온 구조적 관행이 '중대재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2022~2024년) 건설업에서만 1천521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연도별로 전체 사망자 대비 건설업 사망자 비중을 살펴보면 ▷2022년 46% ▷2023년 43.8% ▷2024년 39.7% ▷2025년 1분기 45.7%를 차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법과 제도는 강화됐지만, 이처럼 현장의 변화는 미비한 상황이다. 법률이 있어도 사고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것은 '규제 대응'의 문제로만 보는 시각 때문이다.
최근 포스코이앤씨, DL건설 등 대형 건설사에서 잇따라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건설업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취임 두 달을 맞은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의 강력한 조치를 주문하면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산업군 전반에 걸친 수사 압박도 거세다. 지난 12일 경기남부경찰청 광명~서울고속도로 공사장 사고 수사전담팀과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은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 인천 송도 본사와 하청업체인 LT삼보 서울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앞서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6월 16일 태안 화력발전소 사망 사고와 관련, 한국서부발전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공개 강제 수사만 6건에 이른다.
사실 기업 입장에선 이번 상황이 상당히 혹독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정부가 재해 사고 시 엄벌에 처하겠다는 기조인 데다, 금융권의 신용 제재, 사회적 불신 등이 한번에 몰려 오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러다가 모두 문을 닫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실제로 줄사표도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4일 발생한 감전 사고 등 사고가 끊이지 않자 정희민 대표가 회사를 떠났다. 강윤호 DL건설 대표와 하정민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비롯한 모든 임원, 현장소장 전원과 본사 전 팀장 등 80여 명이 전날 사표를 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한 번의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수십 건의 계약보다 기업의 명성과 생존을 지켜 준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강요하던 관행을 벗어던지고, 설계 단계부터 차근차근 안전을 반영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중대재해는 사용자만의 문제가 아닌, 작업자들이 직접 위험을 감지하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내 건설업계가 생존하기 위해선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 '초미지급'의 불길을 단절의 상징이 아니라 변화의 불씨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김금혁 "반중(反中)시위 지적? 중국 비위 맞춘다고 국민 입에 자물쇠 채운 李" [일타뉴스]
"윤미향 광복절 사면? 조두순 어린이날에 사면한 격" 개혁신당 비판
50일간 현장 단속…중대재해법 '과잉' 논란 재점화
"탈의실 아내 몸 훤히 보여"…경북 유명 호텔, 女사우나 노출 논란
[날씨] 8월 12일(화) "대체로 흐리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