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하영석] 호르무즈 위기, 해운강국다운 대응은?

입력 2026-03-17 12:00:30 수정 2026-03-17 15: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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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 과정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하였다. 이에 이란은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 국가에 대한 공격과 동시에 기뢰 부설로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시도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해협 보호 방안을 강구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 군함 파견을 촉구하였다.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의 20%, LNG의 25%가 통과하는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요충지다. 해협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UAE는 푸자이라항까지 일평균 200만 배럴을 공급할 수 있는 우회 송유관을 건설했고, 이를 통해 최근 600만 배럴의 원유를 한국에 긴급 제공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홍해 얀부항까지 일평균 500만 배럴을 보낼 수 있는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다. 두 송유관의 공급 능력은 약 700만 배럴로 페르시안 걸프 지역의 일평균 공급량 2천500만 배럴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이다.

현재 호르무즈해협은 사실상 선박 통항이 멈춘 상태다. 3월 12일 기준, 페르시안 걸프에는 약 557척의 선박이 정박하거나 대기 중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우리 국적선도 26척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선박에 승선하고 있는 선원들은 큰 불안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잿빛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가혹한 환경에서 정박 중인 선박을 겨냥한 드론·미사일 공격, 기뢰 공격 같은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선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선원 안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 해운의 국제적 신뢰, 자원수송로 보호의지, 정부의 위기 대응 역량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른 복합적인 사안이다.

선사는 용선인(화주, 주로 메이저 정유사)과의 계약에 따라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송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공식적인 선전포고 또는 소개 명령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선원만 일방적으로 철수한다면, 이는 단순한 안전조치를 넘어 계약 불이행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세계 5위의 해운국인 한국의 신인도와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의 봉쇄 장기화 가능성과도 연계되어 있다. 해협 봉쇄는 이란 경제에도 치명적 부담이 되며, 이란산 원유의 80% 이상을 수입하는 중국 경제에도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장기 고착화되기보다는 단계적인 정상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페르시안 걸프에 정박 중인 국적선의 대부분은 이미 법적 최소 승선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필수 선원은 UAE 등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점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선원을 철수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글로벌 해상요충지의 위협에 대해 국제사회가 신뢰할 만한 대응체계와 실행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우선 서둘러야 할 일은 국제공조체제의 구축이다. 페르시안 걸프에서 활동하는 주요 해운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위기상황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선원 안전 문제도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한국 군함을 파견하고 우방국들과 함께 해협 보호 협력을 강화해 안전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필수 선원 교체 시스템의 작동이 가능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전쟁보험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보험사들은 전쟁보험 인수를 철회하거나 평상시보다 12배 가까이 인상된 보험료를 요구하고 있다. 선가의 0.25% 수준에서 3%까지 치솟으며 선박은 사실상 무보험 상태에 놓여 있다. 덴마크는 비상 상황에서 선박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70억달러 규모의 국가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상업보험이 감당하지 않는 위험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해운의 안보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평시 해운은 수출입 물동량의 99.7%의 수출입 운송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다. 전시에는 전략물자 수송과 병참 지원을 맡는 '제4군'이 된다. 해운을 유지하는 선원은 '국가필수인력'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호르무즈 사태는 단지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만이 아니다. 해상운송로 위협에 한국 정부가 선원 안전, 해운 신뢰, 에너지 공급망을 동시에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