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훈 문화특집부장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커버곡을 감상한 적이 있다. 해당 가수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허밍을 적절하게 섞으며 감탄할 수준으로 곡을 소화해냈다.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내로라하는 가수들보다 낫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댓글 또한 '천상의 목소리'라든가 '눈물날 정도'라는 등 극찬 일색이었다. 도대체 해당 가수가 누구길래 싶어 문득 인터넷을 검색했다. 관련 글을 읽다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노래의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AI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겼던 '감성'을 이토록 완벽히 재현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해당 계정의 유튜버가 믹싱 등 후반 작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는 했다. 그러나 노래만 듣고 있노라면 영락없는 인간이었다.
AI가 이제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속도 또한 무섭다. 문화 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곳곳에서 달라진 모습이 역력하다.
대구의 한 출판사 대표 A씨는 요즘 나이 지긋한 분들이 사무실에 곧잘 찾아오는 탓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평생 글쓰기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자신이 작성했다며 원고를 들고 찾아와 출간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A 대표는 "원고들을 대충 훑어보면 전형적으로 AI가 작성한 스타일의 글이 대부분이라서 그들을 돌려보내기 바쁘다"고 푸념했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 10일부터 아예 자사 도서에 '인간 저술 출판물'(HAP) 보증 마크를 도입했다. 자사 일부 출판물에서 AI가 집필한 책이라는 오해가 제기되자, 이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더 나아가 한국출판인회의 등과 협의해 업계 공동 기준 마련도 제안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문화 현장에선 AI로 인한 변화와 함께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한 가지 믿음이 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감성 및 독창성을 능가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거라는 선입견이다. 하지만 그 믿음조차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문득 든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문화 상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월등함'과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희소성'이다. 거장의 그림 한 점이나 명가수의 라이브 공연에 천문학적인 액수가 매겨지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결과물을 무한정 찍어내는 시대에 도래한다면 이같은 가치 평가의 기준이 마냥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만약 AI가 작사·작곡하고 부른 노래가 인간의 창작물보다 훨씬 뛰어난 감동을 준다면, 소비자들은 과연 '인간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응당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까.
일부는 희소성에 큰 가치를 매기며 여전히 인간의 작품에 대가를 지불하고 소비하겠지만, '월등함'에서 흠집이 간 작품에 과거처럼 대가를 지불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알고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
AI로 인한 편의성과 효율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생성형 AI를 넘어 AI 에이전트의 출현으로 하루 몇 시간씩만 일하고도 매월 수억원을 번다는 스타트업 대표의 인터뷰를 봤다. 분명 누군가에는 거대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AI가 '회색 코뿔소'(이미 징후가 뚜렷하고 위험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대응이 늦어져 피해가 커지는 상황을 일컫는 경제용어)가 되지 않을까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