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오정일] 양면협상게임, 관세에서 방위비까지

입력 2025-08-13 14:27:09 수정 2025-08-13 18:28:34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모든 협상은 대체로 중간 지점에서 끝난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그 절충점은 '관세율 15%'였다. 핵심 내용은 네 가지다. 첫째, 미국은 우리나라에 15%의 관세를 부과한다. 둘째, 우리나라는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 셋째, 우리나라는 미국 조선산업에 기술과 자본을 제공한다. 넷째, 미국은 우리 쌀과 쇠고기 시장에 대한 추가 개방 요구를 철회한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협상 결과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농산물 시장을 지켰고, 관세율을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그 대가로 미국은 투자 유치와 조선산업 현대화라는 실익(實益)을 챙겼다. '관세율 15%'는 두 나라가 선택한 타협안이자 협상의 상징이었다. 이를 얻기 위해 우리 정부는 자본과 기술을 미국에 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협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국제정치학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퍼트넘(Putnam)의 '양면협상게임'(two-level game)이 그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대외 협상에서는 외국과의 합의 뿐 아니라 국내 여론의 승인까지, 두 무대에서 승리해야 한다. 최상의 협상 결과라도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실행에 옮길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윈셋'(win set)이다. '윈셋'은 국내에서 수용이 가능한 합의의 범위를 뜻한다. 이 범위 안에 들어야 협상이 실제로 작동한다.

'관세율 15%'는 두 나라의 '윈셋'이 맞닿은 지점이었다. 미국은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지키려 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보다 높은 관세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관세율 15%'는 두 나라의 전략적 균형점이면서 국민이 받아들이기 쉬운 심리적 중간값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은 '윈셋' 관리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는 사전에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고, 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 사후에는 "관세율 25%를 막았다"라는 홍보만 있었다. 그 결과 국민의 기대와 정부의 자평(自評) 사이에 큰 간극(間隙)이 생겼다.

비슷한 장면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단체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해 다음 정부에서 무력화됐다. 또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한미 관계 회복을 꾀했지만, 국내 여론 악화로 무산됐다.

2005년 '한미 FTA 협상'은 다른 양상(樣相)으로 전개됐다. 협상 전 공청회와 설명회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촉진하고, 농업계 반발에 대비한 보완책을 마련해서 '윈셋'을 넓혔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협상'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정부는 경제계, 정치권, 시민사회와 협의해 구조조정과 금융개혁에 관한 안(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국내 지지를 확보했고, 협상 타결 후에도 흔들림 없이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8월 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의 의제(議題)는 주한미군 규모, 전시작전권 전환, 방위비 분담, 미국산 무기 구매 등, 주로 안보에 관한 사안이다. 안보는 국내에서 여론과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issue)다. 그만큼 국내 제약이 강하다. '윈셋'은 좁고 선택지(選擇肢)도 적다. 우리의 '윈셋'은 '한미 관세 협상' 때보다 더 좁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 회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 좁아진 '윈셋' 안에서 안보 이익을 지키고, 미국의 요구와 국내 여론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방위비 분담, 무기 구매처럼 국가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구체적인 수치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일부 양보가 불가피하더라도, 그 대가로 얻는 이익과 전략적 가치를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대외 협상은 상대국과의 합의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두 번 설득해야 한다. 한 번은 상대국을, 또 한 번은 자국민(自國民)을 설득해야 한다. 국가 간 협상은 외교와 국내 정치 전략을 함께 짜는 작업이다. 그래서 실익보다 명분이, 거래보다 설득이 중요할 때가 있다. 안보처럼 국가 존립(存立)이 걸린 사안이 그 예다. '윈셋'을 넓히는 힘은 국내 여론의 지지에서 나온다. 대외 협상력은 거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