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그래, 그 집이라서

입력 2022-03-02 10:16:05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분수에 넘치도록 큰 집에 살았던 적이 두 번이다. 실내만 마흔 평 정도에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는 주택의 1층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방 4개에 주방과 욕실 그리고 커다란 마루까지 있는 집.

나는 그곳에서 내 생애 가장 고달팠던 경제적 고비라는 터널을 통과했다. 절망과 분노에 짓눌린 희미한 희망이 심리적인 카오스의 한복판에서 어찌 살아남았을까. 지금 떠올려도 왜 그렇게 넓은 집에 살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사실 그 집은 보증금이 아주 쌌다. 그렇긴 해도 평소의 나답지 않게 유지비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마 내 삶에 닥친 불행을 털어내려는 가여운 허영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이도 비슷하겠지만 나는 살면서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지 않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소설쓰기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이전에 살던 집보다 두 배나 큰 집을 선택한 것도 아마 심리적인 배경이 비슷했던 듯하다.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보는 것. 최대한 먼 곳에서 시간을 견뎌보는 방식 말이다.

그런데 이삿날이 어긋났고, 힘겹게 이사를 하자마자 동파이프까지 터졌다. 방 한 곳에 장판이 물침대처럼 출렁거렸다. 방금 풀어놓은 짐을 다시 마루에 옮긴 후 먼지를 뒤집어썼던 그때 한겨울의 추위라니. 하지만 그쯤은 실존의 문제일 뿐이었다. 일반적인 허용의 한계치를 넘는 일도 있었다.

방 한 곳에서 집주인의 둘째 아들이 죽었다고 했다. 자살이었다. 어쩐지 벽과 문에 난 자국이 예사롭지 않았다. 쇠주먹을 들이꽂은 듯 움푹 파인 자국들. 이전에 살던 주인네 부부가 다툼이 잦았다고 했다.

어쨌건 그런 집에 방금 이사를 왔다. 나는 쉽게 대응을 못하겠어서, 일단 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고 찜찜했지만 다시 이사를 나가야 하는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 그의 방은 우리의 주거공간에서 멀었다. 그곳을 창고로 썼는데, 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빠르게 다녀왔다. 누군가 왜 뛰냐고 물으면 추워서라고 대답했다. 마루는 벽과 천장까지 온통 나무여서 진짜로 추웠다.

봄이 되자 집의 장점이 크게 다가왔다. 특히 아이들에게 좋았다. 거실에서 축구를 해도 꾸지람하는 주인이 없었고 거북이가 죽으면 묻어줄 화단도 있었다. 화단은 잔디가 깔린 마당의 수돗가 옆에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방울토마토와 수세미를 키웠다. 가을엔 고추가 붉게 익었고 가지가 달았다. 동네 애들이 복작이던 골목은 또 어땠던가. 나는 그 집에 눌러 붙어서 살 궁리를 했다.

사실 겨울이 가기 전에 이미 나만의 애도를 마쳤다. "우리 발자국마다에 원시의 죽음이 남겨져 있을 거야" 라고 다른 이에게 너스레를 떨었고, 잘생기고 기타를 잘 치는 대학생이었다던 그에게 들어보라며 레코드를 틀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저곳의 그에게 닿기를 바라며.

우리 네 식구는 그 집에서 5년 정도 살았다. 가끔 그때를 되돌아본다. 이미 마침표를 찍은 비탄한 생애에게 건네던 음률의 현재적 연결과 삶 너머에 있을 미지의 존재가 겹쳐져 있던 시공간의 혼재에 대해.

아마 그 집이 아니었다면 나의 가녀린 희망은 쉽게 꺼져버렸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