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고흐 마을

입력 2022-02-28 23:11:55 수정 2022-03-02 07:35:04

김영필 철학박사
김영필 철학박사

내가 다니는 헬스장 앞 철물점의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평가되는 것 중 하나인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을 나에게 그냥 주셨다. 누가 그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액자까지 달려있어 보관이 잘된 작품이다.

고흐의 마지막 실존의 고통이 그림으로 승화된 마을로 가기 위해, 2017년 2월 6일 나는 파리에 사는 딸과 함께 생 라자르 역에서 텅 빈 아침 기차를 탄다. 생 라자르 역사(驛舍)는 높이 솟은 철 지붕이다. 그 틈새로 빛줄기가 깊숙이 침투한다. 이 순간을 클로드 모네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 역을 배경으로 12점의 그림을 그린다. 그의 '생 라자르 역'(1877)은 인상파의 첫 면모를 드러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기차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고흐가 죽기 전 머문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밀밭이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2월인데도 노란색이 곳곳에 흩어져있다. 이곳에서 고흐는 죽기 전까지 거의 매일 한 점씩 그림을 그린다. 이 마을을 처음 방문한 이방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오베르 노트르담 성당이다. 고흐의 그림 '오베르 성당'의 배경이 된 곳이다. 성당은 고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서 있다. 어둡고 두터운 로마네스크 양식에 겸손한 고딕을 얹은 건물이다. 로마네스크의 어두움에 낮은 고딕으로 빛을 선사한다.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고흐는 1889년 5월까지 남부 아를에 15개월 머문다. 머무는 동안 약 200점의 그림과 100점의 스케치 그리고 200통의 편지를 썼다.(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237쪽, 청미래 펴냄). 이후 아를을 떠나 이 오베르 마을에서 삶을 마무리한다. 2018년 줄리언 슈나벨 감독의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가 이 마을에서 80일간 머물면서 75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마지막 장면에서 자막으로 알려준다.

고흐는 죽음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1889년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을 그렸다. 사이프러스는 그리스 신화 속 키파리소스와 중첩된다. 케오스섬에 살던 미소년 키파리소스는 어느 날 창을 잘못 던져 자신이 항상 애지중지하면서 타고 다니던 수사슴을 맞추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수사슴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던 그는 아폴론에게 자신도 죽여 달라고 간청한다. 아폴론은 그의 몸을 사이프러스 나무로 변하게 해 주었다. 사이프러스는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이면서도 하늘로 쭉쭉 뻗어 있어 죽음의 초월을 은유하기도 한다.

고흐는 또한 마디가 뒤틀려 고통을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도 그렸다. 올리브는 평화의 상징이다. 아테나 여신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선물한 것이 바로 올리브 나무이다. 고흐는 생 레미 요양원에서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웠을 때 10여 점이 넘는 올리브 나무를 그렸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그렸다. 고통을 갈고 닦으면 평화와 맞닿는다. 고통이 없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다. 고흐는 오베르 마을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영원히 안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