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연장 좋으면 서툰 목수도 명장

입력 2022-02-16 19:56:21 수정 2022-02-17 08:03:48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유세차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유세차 '사망 사고'로 여야 후보들이 유세차 스피커를 끄고 '차분한' 선거운동을 하기로 한 16일 서울 시내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유세차량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최경철 뉴스국 부국장
최경철 뉴스국 부국장

15일 대구를 찾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도발적인 비유를 했다. "이번 대선은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라서 어차피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대구 중구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한 주성영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그는 이번 대선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평했다.

에일리언은 '에일리언'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생물, 프레데터 역시 영화 '프레데터'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다. 여당과 제1야당 대선 후보가 시원찮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진 전 교수가 인류의 미래까지 걱정한 탓일까. 나라 밖 사람들도 우리 대선에 입을 대면서 조롱을 날리고 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더타임스 일요판)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한국 대선의 유력 후보와 그 부인 얘기를 실었다.

"김혜경(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부인) 씨가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포함한 이른바 '과잉 의전' 논란으로 지난 9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김건희(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씨 또한 통화 녹음 유출본에서 언론인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했으며, 자신의 신통력을 자랑하기도 했다"라고도 썼다.

북한의 안보 위협, 부동산 문제 등 한국이 마주한 위기가 큰데도 이런 이슈 대신 엉뚱한 얘기가 이슈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질타도 날렸다. 한국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역겹다'(most distasteful)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까지 이 매체는 일갈했다.

정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행위자와 구조를 나눠 분석한다. 뛰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운동장 구조 역시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핵심 요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도 이제 대통령 한 사람의 '영웅적 모습'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정치구조 재편을 통해 행위자의 오류를 구조의 장점으로 극복하는 길을 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다.

이 지점에서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문에서 낸 보충 의견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안 재판관은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목했다.

그러고는 대안을 제시했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 권력을 분할하고 권력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권력 분립원리에 기초해 지방의 자율·책임을 강조하는 지방분권 원리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원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권 분립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는 그의 명저 '법의 정신'에서 권력의 집중은 부패를 가져오고, 이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고 했다. 이에 많은 선진국들이 분권형 제도를 도입·실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기대면서 권력의 인격화 현상을 재연·반복시키고 있다.

행정부를 이끌게 될 새 대통령은 국회와 사법부를 존중해 수평적 3권 분립 구조를 분명하게 정립하는 한편, 과감한 권한 분산을 통해 지방정부의 자치권도 인정하면서 수직적 권력 분립도 이뤄내야 한다.

탄핵이라는 파괴적 정치 상황 속에서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분권제'를 약속했건만 분권형 국가라는 새 질서는 결국 창조해내지 못했다.

이번에 나온 후보 중 좋은 대통령감이 없다고 한탄만 쏟아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좋은 제도를 통해 연장만 잘 다듬어 놓으면 서툰 목수도 명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