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자 소설가
나라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머니가 작은 듯하다. 그러니까 확장형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아직도 처음 해보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안 하는 것도. 낯선 길이나 사람을 따라나서는 빈도도 낮았다. 주변 사람과 비교하여 보편적인 한도를 정한다 해도, 그랬다. 최근의 일 한두 가지만 얘기해볼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주거공간을 거의 반으로 줄였다. 50㎡. 아파트에 놀리는 공간이 없어서 좋다고 말하자 어떤 이가 반박했다.
"관리하기 힘들거나 형편이 안 되는 거겠지요. 넓은 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는 그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그 말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틀렸다. 내게 집은 베이스캠프 비슷한 곳이었다. 꽃을 가꾸거나 공간을 아름답게 꾸며, 주인의 심미안을 드러내거나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가끔 그게 부럽지만 말이다.
다른 예로 넘어가보자. 구제 옷가게에 처음 간 것도 얼마 전이었다. 주변 사람이 중고마켓을 이용한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기에 심리적으로 익숙해진 장소였다. 특히 의류학과를 졸업한 사촌이 떠올랐다. 사촌은 싸게 산 옷을 멋들어지게 리폼해서 입을 줄 알았다.
가게에 간 첫 날에는 옷을 사지 못했다. 누가 왜 버린 옷인지 몰라 찜찜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나는 헌옷을 산 적이 없었지만 얻어 입은 적은 꽤 있었다. 아는 사람이었고, 주로 아이들 옷이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보리색 블라우스가 눈에 아른거렸다. 소매와 허리 밑단을 넓게 부풀렸고 고무로 볼륨을 줘서 꽤 화려했다. 거기에 더해 유명 브랜드의 영어 이름이 등짝에 크게 프린트된 검정색 바람막이와 시스루로 만들어서 속이 비치는 셔츠까지.
이튿날 건물이 오래돼 천장이 낮고 옷먼지가 날리는 가게에 다시 간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샀다. 아니, 쓸어 담았다는 게 사실일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후 한 달 동안에 나는 그곳을 열 번 정도나 드나들었다. 그 가게에 옷이 새로 들어오는 요일도 외웠다. 무엇에 홀린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 나는 면셔츠와 청바지 종류를 즐겨 입는 사람이었다. 정장을 입는다 해도 대체로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레이스가 과하고 남이 돌아봄직한 옷에 혹하다니. 죽을병에 걸렸거나 무슨 큰 변화가 있는 게 분명했다.
문득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물가가 싼 인도에서 천 원짜리를 마구 뿌리듯이 쓰면서 자유를 느꼈다는 그 말. 헌 옷을 쓸어 담으면서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버려도 조금만 아까우니, 과감한 디자인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도.
또 다른 기억도 났다. 아이를 다른 사람의 취향대로 옷을 입히자, 내 아이가 급작스럽게 낯설었던 기억과 겨우 옷이 바뀐 것으로 아이의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한 것 같았던 통쾌했던 그 기분. 어른이 된 아이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단다. 내가 축소한 위의 부분들이 공간을 상실했다면 나의 다른 어디가 확장돼 있는 걸까. 마음을 기울여 긍정적으로 활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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