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신경섭 대구시의회 사무처장의 선배 고 여희광 대구시 행정부시장

입력 2022-01-20 13:50:42

2013년 여희광 당시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당시 부구청장·부군수들과 오찬하던 때의 한 장면. 사진 우측 앞에서 세 번째가 여 부시장. 여 부시장 바로 앞에 자리한 사람이 신경섭 현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신경섭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제공.
2013년 여희광 당시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당시 부구청장·부군수들과 오찬하던 때의 한 장면. 사진 우측 앞에서 세 번째가 여 부시장. 여 부시장 바로 앞에 자리한 사람이 신경섭 현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신경섭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제공.

199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필자가 고향 대구에 내려와 처음 만나게 된 분이 당시 여희광 교통기획계장이었다. 필자에겐 큰 키에 시원스런 눈매와 선한 인상의 미남으로 첫인상이 각인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대구시 베스트 공무원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분이셨다.

이후 필자는 당시 여희광 문화체육국장을 운좋게도 상사로 모시게 되었다. 신년도 업무보고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한 아이디어에 서로 마음이 꽂혔다. 당시 대구대표축제였던 '달구벌축제'의 무게중심을 다채롭고 역동적인 미래로 옮겨 문화를 성장동력화하고 세계로 도시마케팅화 하자는 발상이었다.

이에 내용도 새롭게 기획하면서 명칭도 '컬러풀 페스티벌'로 개칭했다. 이렇게 도입된 것이 지금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구대표 거리축제인 '컬러풀 퍼레이드'로 발전했다. 훗날 모 시장님은 오랜 역사를 지닌 달구벌축제를 단번에 개명하는 '반란'을 일으켰다며 여국장이 간도 크다고 농담을 던지셨다.

2003년에는 대구시가 세계청년들의 스포츠축제인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00년 봄 대회준비 초기시절, 시내 커피숍에서 여희광 국장님이 유니버시아드대회지원팀장으로 갓 발령받은 필자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내가 만일 자네라면, 대회준비 기본계획을…." 그 말에 오기가 발동한 대회준비팀(필자포함 총 3명)은 다음날부터 여국장님과 평균 밤 12시를 넘기는 나날들을 반 년 이상 반복하면서 용역비 한 푼 안 들이고 과업을 완수했다. 그 때 시청에선 '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반' 불이 꺼지면 시청 불이 꺼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2013년 폭설이 쏟아진 어느 겨울날 새벽 4시. 한창 자고 있는데 밤 정적을 깨며 전화벨이 울렸다. 당시 여희광 행정부시장님이셨다. "신 부청장, 지금 수성구 모 처에 나와 있는데 길거리가 온통 빙판길이야. 지금 현장 점검하고 있지?" "헉. 아 예…." 필자는 비몽사몽 황급히 아파트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깜깜해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 뛰쳐나갔다. 지금도 아내는 눈만 오면 당시 폭설 걱정에 새벽을 가르며 다니셨던 그 분을 "참 대단타"고 회고한다.

서울에 출장간 김에 당시 대구시에서 행정안전부로 전출간 여희광 기획실장을 인사차 찾아 뵈었다. 좁은 사무실에 긴장감이 감도는 재난관리국 한 곳에서 일에 빠져 정신이 없는 여실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웃음을 선사하셨지만 그의 등 뒤엔 객지의 고독감과 힘겨움이 느껴졌다. 그분의 건강이 괜시리 걱정되었다.

2014년은 슬픈 해였다. 누구보다도 일에 열정적이셨던 여희광 부시장님(당시 56세)에게 먹구름이 닥쳤다. 당시 행안부에서 수 년의 고생 끝에 금의환향해 다시 대구시 부시장으로 내려 온 그 분에게 대장암 말기 선고가 떨어진 것이다. 그해 8월 그 분은 즉시 부시장직을 내려놓고 병원에서 암과 사투를 벌이셨다. 수술이 성공적이라는 소식에 우린 모두 환호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암 재발 소식이 다시 날아들었다. 그 후 치료를 위해 공기 맑은 청도군으로 지인의 도움으로 거처를 옮겨보기도 했다. 당시 필자가 가끔 다니던 교회에서 예배 중 얼굴이 헬쓱해 진 여부시장님 내외를 조우했다. 그 분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어느 겨울날 펑펑 내리던 눈 장면과 함께. 하지만 하늘은 그 분에게 많은 시간을 허락치 않았다. 2016년 1월. 그 분은 영원한 겨울남자가 되어 하늘의 품에 안겼다.

"갔습니다/선한 눈매, 미소를 남겨두고 한 사나이가/채 눈물이 당신의 흔적을 지울 수 없습니다/대구 곳곳 당신의 애살어린 눈길이 스며들었습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함께 엮은 인연의 실타래를 더 단단히 꼴 걸 그랬습니다/임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시간도 임을 데려가지 못하게 꽁꽁 숨겨 놓을 걸 그랬습니다/임이여."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전화: 053-251-1580

▷이메일: lhssk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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