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빈 하늘을 오가는 날짐승과 낙목한천(落木寒天)의 산하를 헤매는 들짐승이 어딘가에 있을 먹이를 찾는 계절이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과 산하의 나무 열매를 거두면서 먹을 만한 것도 남겼던 조상들의 지혜는 바로 엄동설한을 버틸 날짐승, 들짐승을 위한 배려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인 펄벅 소설가가 한국 방문 중 경주에서 본 광경도 그러했다.
1960년 가을, 한국을 둘러보기 위해 기차로 경주에 들렀던 펄벅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녘 나무의 붉은 과일을 보고 뭐냐고 물었다. 동행자는 까치를 위해 남긴 감이라 말했다고 한다. 새가 먹도록 따지 않고 남긴 까치밥이란 통역까지 더했으니 미물(까치)까지 배려한 한국인 심성에 놀라고 감동했을 법도 하다. 지금도 우리는 한국을 찾거나 지나치는 뭇 철새를 위해 들녘에 곡식 낱알을 뿌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 선조만 그랬으랴.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다.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며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했다. 또한 "안식년의 소출은…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라며 땅 주인에게 다른 사람과 들짐승을 위한 배려를 당부했다.
우리는 일찍부터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강조했다. 고루 이롭게 함을 교육의 이념으로까지 삼았다. 서양에서도 이처럼 성경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땅의 소산(所産)을 공유하는 가치와 배려의 마음을 강조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 사는 이치가 우리네나 그네가 서로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고루 나눠 갖거나 공유해야 할 가치와 대상이 어찌 땅의 소산과 농작물에만 그칠까.
정치 분야도 그렇다. 우리는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간 독재를 멈추게 하고 야당 세력인 윤보선 대통령을 권좌에 올렸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집권 뒤 1987년 민주화 투쟁도 이끌어냈다. 그리고 우여곡절 속에 전두환·노태우 군(軍) 기반 정권은 김영삼·김대중 민주화 투쟁 경력 대통령으로 바뀌었고, 이명박·박근혜 보수 대통령은 노무현·문재인 진보 성향 대통령으로 달라졌다.
시계추처럼 오갔던 정권의 교체는 세월의 시차 속에 이뤄졌고, 그만큼 우리 사회는 변화의 경험과 발전을 겪었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한국은 긍정과 부정의 평가 속에도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런 변화의 세상 흐름과 달리, 1988년 필자 입사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33년 동안 이어진 똑같은 정치색의 독점 결과, 정치의 뒷걸음질에 젊은이는 이탈하고 30년 전국 꼴찌 경제지표(GRDP)를 기록한 대구가 있다.
마침 내년 3월 9일, 대구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중·남구선거구 보궐선거가 동시에 있다. 여태껏처럼 두 선거에서 특정 정치색의 싹쓸이는 알 수 없다. 만약 그런 선거 결과라면, 뒷날 한 지역의 정치 및 사회 발전의 상관성을 연구할 후세인에게 대구의 정치 권력 쏠림과 지역사회의 정체 및 정치 퇴보는 좋은 사례가 될까 두렵다.
인구 감소, 청년 이탈, 전국 꼴찌 경제지표의 현상이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최근 대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산업구조 개편 노력과 호국 보훈 분야 정책 개발 등 변화의 몸부림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내년 3월 대구의 두 선거에서 정치 분야의 몰표 탈출이라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기적'까지 일구면 어찌 '대구답다'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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