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철이 만난 사람] 한민호 전 문체부 국장 "文정부, 공무원 재량 박탈 이념지향 정책 강요"

입력 2021-10-04 15:46:37 수정 2021-10-04 23:24:40

SNS에 정부 비판 글 올렸다가 2019년 10월 파면 처분…지난 8월 '파면 취소 소송' 승소
'소주성' 자영업자 망하게 하는 정책…원자력 산업 무시, 반일 선거에 활용
"지금 집권세력은 어설픈 지식 갖고 공무원들의 재량 박탈해 공직 사회 창의성 상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공단 만들어 정부 정책 종합적으로 보라했는데 이 정부는 역행"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이무성 객원기자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이무성 객원기자

문재인 정부 청와대 본관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매일신문 서울지사에서 기자는 지난달 30일 오후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만났다. 한 전 국장은 문재인 정부의 여러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가 '짤린' 사람이다. 감봉·정직 등이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중징계인데 그는 공무원에게 사형 선고라 할 수 있는 파면 처분을 받았다.

그의 얼굴은 밝았다. 지난 8월 파면 취소 소송에서 승소, 명예회복이 곧 이뤄질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터. 천성이 '굴복', '굴종', 이런 단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직진형 공무원'이었다.

- 무슨 얘기를 해서 '짤린' 것인가?

▶2019년 수백차례에 걸쳐 내 SNS에 글을 올렸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정책, 반일 선동 정책, 굴종적 대북 유화정책 등 크게 대별하면 4가지 정도 문제점에 대해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 어떤 내용이었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를 없애고, 자영업자를 망하게 하는 정책이라는 요지로 비판했다. 탈원전 정책은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우리 원자력 산업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일방적인 반일 선동주의, 그리고 북한에 끌려가면서 결국 한반도에 큰 위협을 안겨줄 대북 유화정책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 왜 이런 글, 즉 정부를 비판하는 '간 큰' 글을 쓰게됐나?

▶어느 정부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처럼 의도적으로 국가의 여러 축을 망가뜨린 것은 본 일이 없다. 내가 교사 생활도 10년 가까이 했고, 이후 행정 공무원으로 1994년부터 일해왔는데 이런 정부는 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솔직히 말해 하는 것마다 나라를 망가뜨리는 행동만 했다.

- 직업 공무원으로서 "정말 이건 아니야"라고 외칠만큼 분노를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반일 선동질을 여당의 선거 전략에 이용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죽창가를 기억할 것이다. 이런 정책들로 인해 지소미아 파기 직전의 위기까지 갔었다. 지소미아는 우리 안보를 지탱하는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일까지 벌였다. 외교부 공무원들도 침묵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그런데 문체부 업무도 아닌데 이런 여러 국정 사안에 대해 왜 문체부 국장이 나서나?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들은 고공단(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가 있다. 고공단을 만든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자기 부처 업무만 알면서 좁은 세상에 갇혀있지 말고 더 크게, 더 넓게 보라는 뜻이었다. 다른 부처 업무가 제대로 안 돌아가면 거기에 대해 비판과 지적을 해야하는 것이 고공단 공무원들의 의무다. 노 전 대통령이 탁월한 혜안을 갖고 이런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나는 고공단 소속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던 것이다.

- 어떤 특정 의도를 갖고, 이 정부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비판 활동을 한 것은 아닌가?

▶원래 옳지 못한 것을 보고 못 참는 성격이다. 역대 여러 정부에서 나는 줄곧 바르지 않은 것이 있으면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지목했다.

- 현 정부 들어 비판적 글로 인해 중징계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예감했다. 전조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7월 문체부 체육정책관으로 있던 나는 총리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발령받았다. 이렇게 이미 '찍혀있는' 상태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글까지 쓰니 대번에 조치가 취해졌다. 2019년 7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그 직후인 2019년 10월 최종 파면됐다.

- 본인도 그렇고 가족들의 고통도 컸을텐데?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인데 걱정하면서도 잘 참아줬다. 이런 고통이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그렇고, 파면될때도 그렇고 후회하지 않는다. 내 행동이 옳은 것이었고,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명예회복의 길이 열린 것인가?

▶문체부를 상대로 낸 파면 처분(문체부는 국가공무원법상 성실·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징계 이유서에는 '개전의 정(뉘우치는 마음)이 없다'는 표현도 명시됐다) 취소 청구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그런데 문체부가 항소를 해 2심에 계류 중이다. 여기에서 승소하면 소송이 끝난다.

- 원래 일 못하는 사람이 투덜거리고. 이른바 '뒷담화'를 많이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일 잘하는 공무원이었다. 문체부 요직인 문화정책과장, 미디어정책관, 체육정책관 등을 모두 거쳤다. 내가 바른말을 잘 하는데 일을 못한다면 이런 보직에 앉히지 않는다. 직급별로 공무원들이 참여해 뽑는 베스트 국장에도 선정됐다. 상사 눈치만 보면서 살지 않았다. 옳다고 생각하면 상사를 설득했다.

- 지금의 집권세력은 공무원들을 어떻게 취급한다고 보나?

▶공무원들은 많은 전문가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준전문가로 대우해야하고 공무원들을 잘 활용해야한다. 그런데 지금 집권세력은 공무원의 재량을 박탈하고 이념지향적 정책을 강요했다. 창의성을 박탈당하니 실력이 발휘될 수 없다. 국가적 낭비다. 뿐만 아니다.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는 일부 공무원들은 탈원전 정책에 동조하면서 중요 정책 파일을 지우는 반역적인 범죄 행위까지 했다.

- 요즘 선후배 공무원들을 만나면 어떤 얘기가 나오나?

▶사석에서 만나면 울분을 터뜨린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하소연을 많이 내놓는다. 정권이 바뀌면 억눌렸던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다.

- 중국이 세우고 있는 공자학원의 문제점에 대해 널리 알리는 시민운동도 요즘 하고 있다. 왜 이 일을 하게 됐나?

▶대학시절 사회주의 언더서클을 해봤기에 사회주의를 잘 알고 중국 공산당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공직에 있으면서 공자학원을 접했다. 그런데 이 공자학원의 폐해가 많다. 이 폐해를 알리고 싶었다. 전국에 39곳이나 있다. 숫자로 따지면 세계에서 3번째로 공자학원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미국은 110곳이나 있었는데 40곳으로 줄었다. 공자학원은 겉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중국 공산당을 미화하고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등 중국 공산주의 선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 좋은 것만 알려져 있는데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우리나라가 이제 중국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해야한다.

◇한민호 : 1962년 충북 청원 생. 평택고·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8년간 중학교 역사교사 재직. 행정고시 37회 합격. 199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직 생활 시작. 2019년 10월 파면 처분. 2021년 8월 파면 취소 소송 승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