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까지 갤러리 바제
오랜 시간 프랑스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정영기 작가가 30여 년 만에 국내 개인전 '거듭(Again&Again)'을 갤러리 바제(대구 수성호텔 별관 1층)에서 선보이고 있다. 귀국한 지 5년. 그간 강원도 영월의 작업실에서 쌓아낸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의 표정에는 설렘이 묻어났다.
그의 작품은 실과 거울이 주된 재료다. 거울 또는 캔버스 위를 촘촘한 실로 한 올 한 올 이어 덮는다. 교차하며 겹겹이 쌓인 실과 그 매듭은 아래에 깔린 거울에 비쳐 더욱 깊은 화면을 만들어낸다.
작품의 배경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의 가마니 짜는 모습이 자리한다. 아버지가 재료를 반복해 엮으며 가마니를 만들었던 행위는 오랜 시간을 두고 작가의 작업과 연결됐다.
"아버지가 창원에서 농사를 지어서, 가마니를 짜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작품의 실 매듭은 실제로 가마니를 짤 때 생기는 매듭과 같아요. 50여 년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의 노동과 제 노동이 이어진다고 할까요. 생계와 예술이라는 목표는 다르지만 그 행위에 대한 열정이나 장인 정신은 같다고 볼 수 있겠죠."
실뿐만 아니라 거울이라는 재료에도 아버지가 담겼다. 그는 "어느 날 거실 장식장 속 거울에 슬쩍 비친 내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며 "실과 거울의 의미가 잘 맞아 떨어져서 재료로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재료로 자신만의 얘기를 펼쳐보이는 것. 그에게 작품은 하나의 일기이자 자서전이다. 그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은 프랑스 유학이 계기가 됐다.
작가는 "한 때는 물감을 막 흩뿌리고 자국을 내며 그리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니 단지 유행에 민감하고 누군가를 흉내내기에 바빴으며 남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썼던 것 같다"며 "남들이 잘한다고 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사가니 그게 최고인 줄 알고 살았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유학을 가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바로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니 오히려 정체성이 뚜렷해졌다.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 나는 남의 모습을 그려온 것만 같았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나만의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만 나를 들여다보되, 나의 지금 모습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술사적 흐름과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10년이면 나 자신도 변하는데 똑같은 작품을 하고 있으면 안되죠. 두려움을 이겨내고 변화하지 않으면 한계가 옵니다.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면 그 작가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저도 제 작품이 앞으로 또 어떤 얘기를 담고 어떻게 변해나갈지 모릅니다."
손이 정직하게 움직이는 만큼 실이 놓이고, 수없이 같은 행위와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화려한 기술과 빠른 생산, 즉각적인 결과가 익숙해진 오늘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오래 마음을 들이는 일'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아침에 깨어나서 자기 전까지 작업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나만의 회화적 언어를 구축해나가는 지금이 너무 즐겁다"며 "관람객들이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떤 아름다움이 숨겨져있는지,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감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3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