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안성기 이어 최불암까지…'국민배우' 시대, 하나 둘 저문다

입력 2026-10-30 04: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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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안성기, 그리고 최불암.

한국 대중문화에서 긴 세월 '국민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배우들이 최근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이순재는 2025년 11월 25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뒤이어 안성기가 2026년 1월 5일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고, 10월 29일에는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향년 87세로 영면했다.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한국 영화와 방송의 현대사를 몸으로 살아온 배우 세 사람이 잇따라 떠난 셈이다.

이순재. 연합뉴스
이순재. 연합뉴스

◆91세까지 '현역'이었던 이순재

이순재는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현역이었다.

1956년 연극으로 데뷔해 70년 가까이 무대와 TV, 영화를 오갔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부터 '허준'의 유의태,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까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자신의 캐릭터도 바꿨다.

80대에도 연극 '리어왕'에서 200분에 달하는 공연을 소화했고, 2024년에는 KBS 드라마 '개소리'로 연기대상까지 받았다.

건강이 악화된 뒤 병상에서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작품밖에 없다"고 답한 모습은 그의 연기 인생을 압축했다.

안성기. 연합뉴스
안성기. 연합뉴스

◆69년 영화 외길…안성기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영화였다

안성기는 조금 다른 '국민배우'였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으로 출연한 뒤 69년 동안 1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만다라'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화장'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남았다.

안성기는 오랜 세월 영화계를 지키면서도 스캔들이나 구설이 거의 없었던 배우로도 기억됐다.

2019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복귀 의지를 놓지 않았지만 2025년 12월 말 자택에서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2026년 1월 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최불암. 연합뉴스
최불암. 연합뉴스

◆그리고 최불암…TV 속 '대한민국 아버지'도 떠났다

최불암의 영역은 또 달랐다.

안성기가 영화의 국민배우였다면 최불암은 TV를 통해 국민과 함께 나이를 먹은 배우였다.

'수사반장' 박영한 반장으로 18년,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22년을 살았다. 이후 '한국인의 밥상'을 14년간 진행하며 실제 한국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2025년 프로그램에서 물러난 뒤 재활치료를 이어오던 최불암은 2026년 10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세 사람은 활동영역도 연기 스타일도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배우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특정 시대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웃던 얼굴들도 이제 80·90대

앞서 이순재의 별세 소식은 tvN '꽃보다 할배'를 기억하는 시청자에게 또 다른 쓸쓸함을 남겼다. 2013년 처음 방송된 '꽃보다 할배'에는 이순재를 맏형으로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함께 배낭여행을 떠났다. 배우 이서진이 이들의 '짐꾼'을 맡았다. 2018년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는 김용건도 합류했다.

그런데 최불암도 이 프로그램과 인연이 있었다. '꽃보다 할배' 대만편 첫 회에는 신구·박근형·백일섭과 막역한 사이였던 최불암이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깜짝 등장했다. 당시 최불암은 자신도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한국인의 밥상' 촬영 일정 때문에 따라가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무릎이 좋지 않았던 백일섭에게 여행에 보태 쓰라며 용돈을 건네기도 했다.

'꽃보다 할배'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화면 밖에서는 같은 세대를 살아온 동료 배우들과 가까운 사이였던 셈이다.

이순재와 최불암이 떠난 지금 원년 멤버 신구(만 90세), 박근형(만 86세), 백일섭(만 82세)은 모두 80대를 넘겼다. '리턴즈'에서 합류했던 김용건(만 80세)도 팔순이고, 당시 젊은 '짐꾼'의 상징이던 이서진조차 만 55세가 됐다.

tvn
tvn '꽃보다 할배2' 캡처

그들은 2013년 첫 여행이 TV를 타던 당시에도 원로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그때 화면 속에서는 나이보다 여행을 즐기는 네 배우의 호기심과 체력이 먼저 보였다. 유럽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던 이순재는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고, 신구와 박근형, 백일섭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수십 년을 함께한 동료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을 배웅하며 "한국인의 밥상만 아니었으면 나도 따라갔을 것"이라던 최불암 역시 이제 세상을 떠났다. 빈 자리가 하나 둘 늘고 있다.

배우는 떠나지만 작품은 남는다는 익숙한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오랫동안 국민과 함께 늙어온 배우들의 경우에는 작품만 남는 것이 아니다. 그 배우를 보며 함께 나이를 먹은 사람들의 시간도 같이 남는다. 그래서 '국민배우' 한 사람의 부고는 때로 한 시대의 부고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