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봉 소설가
퇴근 후 저녁을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아내와 손잡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게 가을, 가을이다. 거대한 낙엽의 어느 한 지점을 조용히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남녀가 달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러닝 복장을 한 부부가 숨을 몰아쉬며 지나갔다. 잠시 후 이어폰을 귀에 꽂은 한 남자가 그리고 또 한 여자가 달려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 빼고 모두가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다들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 열풍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이다. 마라톤 대회는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마감되고, 함께 모여 달리는 '러닝 크루'는 운동 모임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공동체가 되었다. 달린 거리와 시간, 경로를 SNS에 올리는 일도 흔하다. 운동 기록을 나누고 응원하며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는다. 달리기는 이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돼가고 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하나, 사람들은 왜 달리려고 할까? 생각만 해도 숨이 차고, 다리 아프고, 고생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굳이 왜? 매일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달리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달리는 시간은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난 혼자만의 시간이다. 누군가와 함께 달린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달리는 리듬 속에서 차츰 머릿속을 비워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겸손하게 느껴보는 시간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달리기가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돌아오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고, 애써 준비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노력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세상에서 달리기는 드물게 정직한 활동이다. 오늘 3㎞를 뛰면 정확히 3㎞만큼 나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뛰면 기록은 어김없이 그만큼 나아진다. 누구의 운도, 배경도 끼어들 틈이 없다. 내 발로 내딛는 만큼, 정확히 그만큼 앞으로 나아간다.
달리기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이 시대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 같은 게 아닐까. 혼자만의 시간,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내는 감각,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내일 아침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저 가을하늘 아래를 달려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