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우리는 매일 죽는다'
처음 이 문장을 마주하면 지독한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의 신체와 일상은 이미 이 거대한 대자연의 순환 주기를 가장 정직하게 증거하고 있다. 밤이 오면 우리는 잠이라는 고요한 소멸의 심연 속으로 침잠한다. 낮 동안 치열하게 앓았던 번뇌와 집착, 마모된 세포들을 밤의 어둠 속에 온전히 묻는 '매일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오면 눈부신 빛과 함께 눈을 뜬다. 어제의 내가 죽고, 새로운 호흡을 부여받는 경이로운 '매일의 부활'인 셈이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염색체의 끝단, '텔로미어(Telomere)'의 비밀도 바로 이 지극한 순환 속에 숨어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는 이 생물학적 시계는, 화가가 화폭 위에 묵직한 필획을 그을 때마다 닳아가는 먹의 길이와 닮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텔로미어의 마모를 막고 수명의 시계를 지켜내는 몸속의 효소가 지구가 자전하는 24시간의 생체 리듬, 즉 밤의 고요한 휴식 속에서만 가장 활발하게 깨어난다는 점이다. 대자연의 주기에 순명하여 매일 밤 온전히 소멸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세포는 비로소 내일을 살아갈 치유의 힘을 얻는다.
이 대목에서 문득 관습적으로 폄하되던 '하루살이의 삶'을 떠올린다. 물속 진흙에서 몇 년이나 되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하루살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허락받는 시간은 고작 단 하루, 길어야 사흘 남짓의 찰나다. 언뜻 미래가 없는 하루살이의 덧없는 삶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삶의 가장 정직한 정답일지도 모른다. 성충이 되는 순간 입마저 완전히 퇴화시킨 채, 먹지도 않고 오직 날갯짓과 사랑이라는 생의 본질적인 소명에만 온 존재를 던지는 눈물겨운 비행을 한다. 이 지극한 몰입은, 100년 가까이 살아가면서도 늘 내일을 핑계로 오늘을 유예하는 인간의 관성을 부끄럽게 만든다.
결국 인간의 삶 역시 하루라는 고유한 점(點)이 쌓여서 이어지는 선(線)이다. 하루살이가 입을 비우고 날아오르듯, 우리 역시 매일 밤 어제의 묵은 집착을 담담하게 비워내야만 새로운 아침의 거룩한 붓질을 시작할 수 있다. 자본의 속도에 맞춰 밤낮없이 달리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스스로의 텔로미어를, 삶의 선을 이루는 이 소중한 하루의 점들을 너무 빨리 지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에 목숨을 거는 저 하루살이보다도 더 조급하고 무감각하게 말이다.
화폭 위에 먹물이 닿는 1초의 찰나, 그 순간을 위해 나는 긴 숨을 고른다. 오늘 아침 마주한 하루는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어제의 연장선이 아니다. 어젯밤 담담하게 소멸을 받아들인 내가, 오늘 아침 기적처럼 다시 눈을 떠온 호흡을 다해 새로 그어내야 할 생(生)의 첫 번째 점이자 가장 눈부신 첫 획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