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론 재점화…한전 사장 "최소한의 인상 논의해야"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 치 전기요금 25조원을 미리 납부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가운데, 이번에는 사채 발행 잔액이 법정 한도를 19조원 넘게 초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전력망 구축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커지자 전기요금 인상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4일 한전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최대 5배까지 허용하는 특례가 내년 말 종료된다. 이에 따라 2028년부터는 사채 발행 한도가 다시 2배로 줄어든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한전의 '2026~2030년 중장기재무관리계획'을 분석한 결과, 2027년 말 한전의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는 28조4177억원으로 추산됐다. 사채 발행 한도가 2배로 축소되면 발행 가능한 금액은 56조8354억원이 된다.
그러나 같은 시점 한전의 사채 발행 잔액은 76조489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례가 예정대로 종료되면 법정 한도를 19조2135억원 초과하게 되는 셈이다.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가 확대된 건 2022년이다.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의 적자가 불어나자 정부는 한국전력공사법을 개정해 사채 발행 한도를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이후에도 물가 부담 등을 고려해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 동결 기조가 이어지면서 채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전의 사채 발행 잔액은 71조5000억원에 이른다.
재원 마련을 위한 한전의 시도도 무산됐다.
앞서 한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향후 5년 치 전기요금을 한꺼번에 납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삼성전자에 20조원, SK하이닉스에 5조원 등 총 25조원 규모였다.
한전은 선납받은 전기요금을 국가 기간 전력망 구축에 우선 활용할 계획이었다. 선납금에 국고채 2년물 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적용하고, 이후 납부할 전기요금에서 원금과 이자를 차감하는 조건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기업은 지난 9월 내부 검토 끝에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 반도체 업황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향후 5년간의 경영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수조원대 비용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앞으로 투입해야 할 전력망 투자비는 늘고 있다.
한전의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전력망 구축에 필요한 투자액은 72조8000억원이다. 2년 전 계획보다 16조3000억원 증가한 규모다.
여기에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까지 반영하면 필요한 투자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한전이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관련 전력망 구축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적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증권사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한전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2조696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2.29%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기간 매출은 27조6057억원으로 0.1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8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78% 급감할 것으로 나타났다. 당기순손익은 493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중동 전쟁 여파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력 구매비 부담이 커진 것이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한전의 재무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김동철 한전 사장은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김 사장은 지난 1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전력망 투자가 계속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은 논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전력망 투자를 계속 외부 차입에 의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국민이 일부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은 가계와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로서는 물가 안정과 한전의 재무 건전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채 발행 한도 축소 시점을 다시 늦추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상인·차주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말 한전채 잔액 전망치 76조원 가운데 약 19조2000억원을 상환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자본을 확충해야 하지만 현재 구체적인 방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서는 사채 발행 한도 정상화 시점을 유예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