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소청장과 중대범죄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을 두고 논란이 일자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사정기관의 수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건 자칫 수사 가이드라인 제공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전통적으로 '배석불가론'이 원칙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이 대통령이 이런 배석불가론을 '위헌적 억지'이자 '궤변'이라고 규정한 AI 답변을 공개하며 반박에 나선 것이었다.
정치권이 AI를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수행비서와 나눈 대화 녹취록을 AI로 분석해 이 대통령의 위증교사 혐의가 인정되기 어렵고 오히려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는 답을 공개하며 여론전을 펼친 바 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역시 청문회에서 이진숙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며 자신이 AI를 이용해 작성한 사과문을 낭독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몇 해 전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AI로 일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논지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앞에 두고 "AI에게 금리 인하 여부를 물었더니 동결이 최적이라는 합리적 답변이 25초만에 나왔다. 연간 35억원에 달하는 금통위원의 보수를 지급하느니 월 3만5천원짜리 AI 구독료를 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비꼬았다.
정 의원의 논법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우리 국민은 헌법적 쟁점이라는 중대한 사안 앞에서 월 몇만원짜리 AI의 답변을 정당성의 근거처럼 내세우는 이 대통령에게 연 2억7천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경제성만 따진다면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말처럼 AI가 대통령이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안다. 금통위원에게도 대통령에게도 높은 보수와 큰 권한을 주는 이유는 빠른 답 때문이 아니다. 반대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판단한 결과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고 그 결과에 끝까지 책임지라는 무게다.
텍사스 A&M대와 신시내티대 연구진이 지난 9월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사용자가 잘못된 전제를 고집하며 AI를 수차례 압박하자 AI는 옳은 답변을 철회하고 잘못된 전제를 옳다고 받아들였다. 제미나이 3.1 Pro는 5회 반복에서 51%, 25회 반복에서는 97%의 붕괴율을 기록했다. 잘못된 정보도 5번만 우기면 절반 정도는 굴복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장 잘 버틴 GPT-5.6 Terra도 각각 25%와 65%의 붕괴율을 보였다.
대통령과 정치인이 AI의 답변에 권위를 부여해 정치적 공방의 무기로 쓰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나타내주는 조사 결과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AI식 답변이 아니다. 그 답변에 기대지 않고도 자신의 판단을 입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정치인의 소신과 역량이다.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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