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흐름을 좀 바꿀까 해요. 제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부동산보다는 금융시장으로 옮기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이재명 대통령, 지난해 7월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주식이) 많이 오르면 조정이 불가피하고, 어느 수준인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이재명 대통령,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에 몰린 돈을 주식시장으로 돌리겠다던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구상은 취임 5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89주 연속 상승한 반면, 주식시장은 고점 대비 40% 이상 하락한 결과가 이 같은 평가를 뒷받침한다.
"조정은 불가피하다", "한국 주식이 너무 저평가됐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만 떼놓고 볼 때 상식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대통령의 말 어디에도 섣부른 레버리지 상품 도입이나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지연 등 정부의 실책이 시장의 폭락을 부추긴 점에 대한 사과가 없었다는 점에 있다.
정부를 믿고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미'들의 피해가 심각하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출시 석 달도 지나지 않아 6조3천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공교롭게도 정부여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히는 4050세대가 전체 손실의 과반을 떠안았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30%대 초반에 머무는 가운데, 40대와 50대에서도 60%대 안팎의 부정 평가가 관측된 점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지지기반의 붕괴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수습하려면 증시 반등 외에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와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관련 행보는 "누군가는 했겠죠" 수준의 발언에 멈춰있다.
◆ 넉 달 새 코스피 40%↓…'레버리지·국민연금' 정부 책임 없을 수 있나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코스피는 장 초반 4.12% 폭락한 5305.98선까지 밀린 뒤, 점차 만회하며 5550.30으로 상승 마감했다. 이달 초까지 7천선에서 횡보하던 지수는 무려 7거래일 연속 하락·폭락을 거듭하며 이제는 5천선 사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코스피의 최고점은 불과 넉달 여 전인 6월 19일 장중에 기록한 9385.59였다. 이날 종가는 최고점 대비 40.86% 하락한 수준이다.
증권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코스피의 급락 원인이 AI·반도체 종목 중심의 조정에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변동폭을 더욱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스피는 10월 주요국 증시 중 하락률 1위(-17.11%)를 기록했다.
우선 국민연금은 주가 부양을 위해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한 차례 늘렸고, 이후에도 리밸런싱을 비교적 소극적으로 실시하거나 고의로 늦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결국 국민연금도 폭락장에서 100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 투자자들과 함께 속칭 '물려'버린 국민연금은 하락세를 줄이는 안전망 역할도 온전히 수행해내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 5월 말 도입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시장 주도주의 등락률을 2배로 추종하면서 단기 폭락의 단초를 제공한 반면, 투자자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제도 미비로 제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품 출시 직후 한 달여 간은 지수가 상승했지만, 이후 세 달은 내리 하락을 거듭했다. 매수·매도 사이드카가 반복되는 사이 '음의 복리'는 쌓여만 갔다. 지난 23일 기준 'KODEX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는 고점 대비 88.03% 내려앉은 상태다.
그런데 레버리지 도입 최초 제안자가 누구인지, 관계기관 사이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여전히 구체적으로 확인된 게 없다. 도입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지목된 청와대 비공개 간담회도 별도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의문만 더욱 키웠다.
◆ 6.3조원 손실 중 4조원 떠안은 4050…지지층 붕괴 '뇌관' 될까
그동안 개인투자자가 입은 손실만 이미 수조원대에 달한다. 지난 21일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월 27일부터 8월 14일까지 단일종목 ETP(상장지수상품·ETF와 ETN 등을 포괄)를 거래한 개인투자자의 손실은 총 6조3천130억원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는 보유 중인 상품의 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이 3조9천888억원, 매매 과정에서 이미 확정된 '실현손실'이 2조3천242억원으로 나타났다.
이후 지수가 내리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시점 손실 규모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추정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의 레버리지 도입 결정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세대는 정부여당의 핵심 지지층인 40·50대였다. 전체 손실액의 62.1%인 3조9천185억원이 이들 몫이었다. 40대의 손실이 2조53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1조8천655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해당 기간 단일종목 ETP를 한 번이라도 거래한 개인투자자 계좌는 총 54만6천개였는데, 이중 40대 명의 계좌가 16만5천200개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역시 15만8천개인 50대였다.
이 가운데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층은 여전히 4050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지만, 이마저도 이탈이 가속화하며 전체 지지세 자체가 쪼그라드는 양상을 보인다. 핵심 지지층의 붕괴가 일부 관측되면서, 다음 하락 사이클에는 이른바 '바닥'으로 여겨졌던 지지율 30%선이 위협받게 된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32.1%로 집계됐다. 반면 부정 평가는 66.1%에 달했다. 약 2주 전 실시된 직전 조사결과와 비교하면 긍정 평가는 3.6%p(퍼센트포인트) 떨어졌고 부정 평가는 3.5%p 올랐다.
연령별로는 40대의 긍정 평가가 40.4%로 가장 높았지만, 이마저도 부정 평가(58.0%)에 17.6% 뒤진 수치다. 긍정 평가가 두 번째로 높았(33.9%)던 50대에서는 부정 평가가 64.8%를 기록했다. 40대의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 대비 0.8%p 하락하는 데 그쳤으나, 50대는 무려 9.9%p 급락했다.
같은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가장 많이 선택된 답변은 '대통령의 현실주의적 안보와 외교, 실용주의적 민생경제가 후퇴해서'(40.6%)였다. 안보·외교와 민생경제를 하나의 선택지로 묶은 문항인 만큼, 이를 증시 문제만으로 해석하는 건 어렵지만 정치권에서는 거듭된 지지 이탈 현상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유·무선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진행, 유선 전화면접 2.0%, 무선 자동응답(ARS) 98.0% 적용. 응답률 2.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잘된 건 우리 덕, 안 된 건 '누군가' 탓?…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부여당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최근 증시 상황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모양새다. 상승 국면에서 '자화자찬'을 거듭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상승 국면에서 임기를 마친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하락 국면에서 임기를 시작한 김민석 현 대표의 증시 언급 빈도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점도 주목할 거리다.
정 전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은 지수가 3천, 4천, 5천선 등을 돌파할 때마다 각종 논평과 최고위 발언 등을 통해 이를 이재명 정부와 여당의 실적으로 홍보했다. 정 전 대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증거(코스피 5500 돌파)"·"단군 이래 가장 높은 경이로운 수치(7200돌파)" 등의 발언을 남겼다.
최고점에 근접한 9천선 돌파 당시에는 "불과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한국 자본시장의 새역사를 썼다"면서 "중동 전쟁 위기 속에서도 이 대통령의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코스피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추켜세웠다.
정 전 대표는 6·3 지방선거 당시에도 "주식 계좌를 보면서 마음이 흐뭇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민주당 기호 1번에게 투표해달라"고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이 대통령 역시 과거 코스피 최고치 경신을 경제 성과로 강조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관련 언급을 피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코스피가 7% 넘게 급락한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소득 4만 달러 돌파 가능성 등을 언급하면서도 증시 하락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야권과 여론 일각에서 레버리지 도입 과정과 책임자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것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입장은 드러내지 않고, 책임을 피해가는 인상을 줬다. 손실이 핵심 지지층에 집중됐고 이미 복구가 어려워진 만큼,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결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청와대 영빈관 기자회견 당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을 누가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결정을 했겠죠"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어떤 과정으로 결정됐는지 세부적인 절차 내용은 제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레버리지 ETF 도입에 대해서는 저도 당시에 보고받은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증시 하락과 관련 "많이 오르면 조정이 불가피하고, 어느 수준인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과거 정부여당의 주요 발언을 재언급하며 지수 상승뿐 아니라 하락장에서 발생한 개인투자자 손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언급하라는 취지의 공세를 퍼붓고 있다. 국정조사와 특검 등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결정은 있었는데 결정한 사람은 없고, 협의와 일정은 있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며 "허깨비가 결정하고 유령이 책임지라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수십조원의 국민 피해를 낳은 사태의 책임자를 끝까지 익명의 누군가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