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도 'MD'가 필요"…뜨는 상권 만드는 법이 달라졌다

입력 2026-10-18 14: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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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르는 중구 '동인동'…상권 기획에 대한 새로운 시선

성주현 피키차일드컴퍼니 대표가 대구 중구 동인동에서 로컬 브랜드들이 모여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골목을 가리키며 상권 구성과 점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성주현 피키차일드컴퍼니 대표가 대구 중구 동인동에서 로컬 브랜드들이 모여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골목을 가리키며 상권 구성과 점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대구 중구 동인동 한 블록에 최근 몇 년 새 식당과 카페, 베이커리, 편집숍, 러닝숍 등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얼핏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목상권처럼 보이지만 시작은 달랐다. 봉산동과 교동, 삼덕동 등에서 수년간 장사하며 자체 고객층을 만든 로컬 브랜드 운영자들이 2024년부터 의도적으로 한곳에 모였다. 이들이 내세운 원칙은 "상권에도 MD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권의 '축'부터 세웠다

2024년 이전만 해도 동인동 일대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 점포들이 자리한 구간은 공장과 사무실 등이 있었고, 상업시설이 밀집한 골목도 아니었다. 기존 유동인구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방문 목적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 역할을 먼저 맡은 건 다른 지역에서 장기간 가게를 운영해본 업주들이었다. 봉산동과 교동, 삼덕동 등에서 적게는 5년 이상 영업하며 자체 고객층을 확보한 이들이 동인동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새로운 브랜드를 냈다.

이들이 택한 건 백화점의 MD(Merchandiser) 방식이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가게를 조합해 골목 자체를 하나의 방문 목적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2024년 오일스튜디오가 먼저 공간을 마련했고 피키차일드가 봉산동에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젤라토 전문점 푸테카와 펌커피, 베이커리 따따따 등이 합류했고 편집숍과 러닝숍 등도 차례로 자리 잡았다.

다만 백화점과 달리 골목 전체의 입점을 통제할 수는 없다. 이들이 말하는 MD가 골목 전체를 계획하는 대신 초기 상권의 '축'을 만드는 데 가까운 이유다. 성주현(35) 피키차일드컴퍼니 대표는 "초기에 상권의 '척추' 정도까지는 만들어 놓고 이후에는 자유도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기본적인 방향을 만든 뒤 새로운 가게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채워지는 게 상권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기 업주들이 직접 모은 점포 외에 상권의 가능성을 보고 스스로 들어오는 가게도 여럿 생겼다. 최근 동인동에 문을 연 카페 리오더 김규진(35) 대표는 "몇 달 동안 동인동을 지켜보면서 기존 가게들이 잘되는 모습을 봤다"며 "음식과 커피, 쇼핑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사람들이 동인동 자체를 목적지로 찾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교동 상권에 음식점과 오락시설 등 점포가 밀집해 있다. 교동은 상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음식점과 주점 등 특정 업종의 비중이 커지며 초기 골목의 모습도 달라졌다는 게 지역 상인들의 설명이다. 매일신문 DB
대구 중구 교동 상권에 음식점과 오락시설 등 점포가 밀집해 있다. 교동은 상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음식점과 주점 등 특정 업종의 비중이 커지며 초기 골목의 모습도 달라졌다는 게 지역 상인들의 설명이다. 매일신문 DB

◆'가게 손님'을 '골목 손님'으로

초기부터 상권의 '축'을 만들려 한 데는 이들이 앞서 거쳐온 골목에서의 경험이 작용했다. 상권이 인기를 얻은 뒤 비슷한 업종이 몰리고 방문 시간대와 소비층까지 달라지면서 처음 형성됐던 골목의 성격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교동에서 7년간 편집숍을 운영하다 동인동으로 옮긴 리리썬 이상민(37) 대표는 "교동은 최근 술집에 많아지면서 처음 영업할 때와 비교해 초기의 느낌이 사라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교동에 남아 장사하는 상인들도 비슷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교동에서 영업 중인 한 상인은 "상권이 뜬 뒤 낮보다는 밤에 사람이 몰리는 상권으로 바뀐 것 같다"라며 "최근에는 인형뽑기나 가챠숍 같은 점포도 들어오고 있는데,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점포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상권이 쇠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고 말했다.

상권이 커지는 것만으로 처음 만들어진 골목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동인동에서는 이를 고려해 식당과 카페, 베이커리뿐 아니라 편집숍과 러닝숍 등 서로 다른 방문 목적을 가진 점포를 함께 구성했다. 특정 업종에 소비가 쏠리는 것을 피하는 동시에, 각 점포가 데려온 손님이 골목 안의 다른 가게로 이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포항에서 동인동을 찾은 유예지(32) 씨는 "원래 찾아가려던 가게가 있어 동인동에 왔는데, 주변에 카페와 편집숍 등 여러 가게가 모여 있어 자연스럽게 다른 곳도 둘러보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으로 번지는 '상권 기획'

골목상권을 바라보는 정부 정책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 상권 정책은 '○○거리'나 '○○골목'처럼 이미 형성된 상권이 쇠퇴했을 때 지자체와 상인회가 활성화 계획을 세워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고 상권을 되살리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민간 기획자가 참여해 상권의 특색을 발굴하고 테마와 방향을 기획하는 방식도 별도의 지원 대상으로 들어왔다.

중기부 관계자는 "올해는 쇠퇴 상권뿐 아니라 민간 기획자들이 참여해 상권을 활성화하고 테마를 만드는 사업을 신규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인동 역시 민간이 개별 가게가 아닌 상권 전체의 구성을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만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민간 기획자가 참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장기간 영업해온 업주들이 별도의 공공 지원 없이 먼저 모여 상권의 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상권마다 가진 자원과 특성이 다른 만큼 민간이 직접 상권의 특색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상권을 만드는 것이 사업의 취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