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영 철학박사 / (사)한국음양지리학회 전임강사
삼성 초일류 기업 성장, 대명당·조상 음덕 뒷받침 있었기에…
호암산과 연관 있는 이병철 號…음택·양택 모두 富의 기운 우세
생가터 명당 위 천석꾼 부잣집
"부자터 기운 받자" 방문객 북적…父 이찬우 조부 묘터 찾기 노력
지형·지세 갖춘 완벽 명당 발견
사업으로 국가 보답한다는 신념…반도체 초석 글로벌 대기업 결실
호암, 용인 에버랜드 안에 영면
옛말에 "작은 부자는 노력해서 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한때 세간에서 '돈병철'이라 불릴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부가 되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초일류 기업 삼성을 탄생시킨 근원은 무엇일까. 전통 풍수의 관점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 본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의 호암산. 필자는 이 산의 산줄기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의 생가와 선영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장내마을 내 생가가 자리하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종조부와 계(繼)증조모 묘소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생가 터와 선영의 형세를 하나의 지리적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어떤 풍수적 해석이 가능할까.
풍수에서는 주산의 형체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산인 호암산은 후부한 토성체(土星體)로, 귀(貴)보다는 부(富)의 기운이 강하다. 따라서 음택과 양택 모두 부의 기운이 우세할 것이다. 호암(湖巖)이란 호도 이 호암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호암이 태어난 생가를 살펴본다. 생가는 이 회장의 조부가 전통 한옥 양식으로 가래형 명당 터에 지은 천석꾼 부잣집이다. 가래는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농기구를 말한다. 호암은 이 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고, 결혼한 뒤 분가하기 전까지 살았기에 이 부자 터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다.
생가 안채 뒤편 산등성이와 건물 지붕은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청룡 방의 바위가 안채를 살짝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그런데 이 바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일반적인 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이다. 이 형상을 금괴를 쌓아 놓은 모습이나 콩 가마니를 쌓아 놓은 형상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 형상이 생가가 부자 터임을 보여 주는 증표다.
또 장내마을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정곡천과 마을 왼쪽에서 흘러오는 월현천이 합류하는 지점에는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노적봉 형상의 동산(해발 59.5m)이 있다. 경방(庚方)의 삼태성(三台星) 사격 등도 이 마을이 예사롭지 않음을 시사한다.
생가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많은 사람이 부자 터의 기운을 받고자 이 바위들을 만지다 보니 훼손되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어 현재는 바위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화단을 조성해 놓았다.
재벌이 되기 위해서는 생가 터도 중요하지만 조상의 음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호암의 조부 이홍석(李洪錫, 1838~1897)은 유학자로 문산정(文山亭)에서 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유학자들은 대체로 천문과 지리 관련 학문을 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회장의 조부도 풍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을 터이니, 집터는 물론 부친의 묘소를 명당에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언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부친이 작고하자 10년 넘게 명당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내던 중 마을에서 가까운 산사의 스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이 스님은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명사였고, 조부의 정성에 감동해 특별한 명당을 알려 주며 그곳에 부친을 모시라고 권했다. 이에 현재의 자리에 모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스님이 점지했다는 이 회장 증조부의 묘소로 가 보자. 이 자리는 호암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맺은 곳으로 해발 약 240m의 높은 산 중턱에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묫자리를 잡을 때는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이곳은 사신사(四神砂)가 잘 감싸 안고, 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은 묘소 아래 큰 바위들이 잘 갈무리하고 있어 좋은 자리가 될 요건을 갖추었다.
이곳 묘소의 형상은 일반 묘소와는 사뭇 다르다. 경사가 급하다. 경사가 너무 급해 묫자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리는 급하게 내려오는 맥을 잡아 주는 바위가 좌우에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거대한 바위가 맥을 거두어 주고 있어 명당이 형성됐다. 필자가 전국의 여러 명당을 간산해 보았지만 이런 지형과 지세를 본 적이 없다.
특이한 점은 묘소 아래 집채만 한 큰 바위 위에 궤짝이나 금고를 연상시키는 네모지고 두툼한 바위가 올라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자리의 핵심이다. 큰 부자의 탄생을 예견하는 하늘의 표식이다. 이 형상을 풍수 용어로 '고궤요성'(庫櫃曜星·돈이나 곡식을 넣어 보관하는 궤짝 모양의 바위)이라 한다. 묘소의 형국은 좌우에 박혀 있는 바위틈에 나비가 앉아 나풀거리는 형상인 비아부벽형(飛蛾附壁形)의 대명당이다. 다만 입향(立向·향을 바르게 놓는 것)이 아쉽다. 입향이 틀어지면 흉화가 따른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태어날 때 집터의 기운과 함께 조상 선영의 좌향(坐向), 파구, 주변 사격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증조부 묘소의 입수와 좌향을 고려하면, 이 회장은 증조부 묘소의 영향으로 부자가 될 기운을 타고났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회장도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한 적이 있고, 조부처럼 풍수지리를 신봉했기에 선조들을 명당에 모시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친증조모의 묘는 남양주로, 조부모와 부모의 묘는 수원 이목동으로 이장했으나 증조부 묘는 명당이라 여겨 옮기지 않았다. 최근에는 남양주에 있던 증조모 진양 강 씨의 묘소를 문산정 뒤편 산 중턱으로 다시 이장했다.
호암은 아버지 이찬우(李纘雨)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 사이에서 2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방황하기도 했고 사업에서도 몇 차례 실패했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린 뒤 처가가 있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시작으로 제당·섬유·무역·비료 사업 등에 뛰어들어 삼성을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말년에는 반도체와 조선업 등 제조업에도 진출해 삼성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할 토대를 닦았다. 그는 1987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안에 있다.
오늘날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이 회장 본인이 사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전 임직원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풍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삼성은 이 회장의 증조부 묘소와 수원으로 이장한 조부모 묘소 등 여러 명당을 얻고 생가 터의 기운까지 더해져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이자 기업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해 본다.
노인영 철학박사 / (사)한국음양지리학회 전임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