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영화 '암살자(들)'은 영부인 오발 저격 사건이라는 오래된 괴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진실을 추적한다는 게 제작자와 감독의 설명인데 여기서 문제는 진실 여부가 아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그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이 자유를 맘껏 누리지는 않는다. 아니, 자발적으로 않는다.
존 F. 케네디의 사생활은 난잡함을 넘어 충격적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독일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자고 나서 케네디가 물었다. "우리 아버지하고도 했어요?"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대꾸했다. "요구는 받았지만 거절했어요." 케네디는 환하게 웃었다. "그 '개자식'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난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요."
케네디 장례식 때의 이야기다. 영부인이 작별의 의미로 관의 중간에 입을 맞추자 이를 티브이로 지켜보던 마틴 루터 킹이 이죽거렸다. "그래, 저기가 그녀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지." 이 내용들은 '카더라' 수준이 아니라 대부분 신빙성 있는 증언들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걸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진영을 넘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누르면 안 되는 버튼이란 게 있다는 말씀이다.
'암살자(들)'과 관련해서 국회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에서 '부엉이 바위'를 언급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 바로 "인간이 돼라"고 소리를 질렀다. 본편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부엉이 바위 괴담이 뭐냐고? '히틀러의 주치의들'이라는 책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쓴, 권력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인데 해당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산을 오른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한단다. 저 바위가 그 바위냐고. 부엉이 바위는 봉하산 7부 능선에 있는 동생 격이고 정상에 있는 바위는 사자 바위다. 사자 바위를 부엉이 바위로 오해해 저게 거기냐고 묻는 것인데 실제로 사자 바위는 30m 높이의 부엉이 바위에 비해 10m 이상 높을 뿐 아니라 수직에 가깝다. 선택지로는 훨씬 더 적합하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파보겠다며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출연하겠다고 나설 배우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 이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괴담으로 치면 진짜 '톱티어'는 따로 있다. '5·18 괴담'이다. 40여 년이 지나 사방으로 뻗은 끝에 이제는 괴담계의 아름드리나무가 됐다. 돌아다니는 내용을 보자.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다.
"5·18은 김대중의 전형적인 성동격서 전술로 발생한 사건이다" "북한 살인기계 600명이 광주에 파견돼 광주교도소를 공격하다가 490명이 하룻밤에 몰살당했다"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여대생의 가슴을 도려냈다" "원한 가진 시민이 같은 광주 시민을 뒤에서 쐈다"
하나같이 끔찍하다. 단 한 개도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진짜 5·18 괴담은 따로 있다. '5·18 유공자 괴담'이다. 당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 '증언에 의한 입증', '인우보증' 등으로 유공자를 선정했다는 소문이다. 그냥 말이 전부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와 투석전이 있었는데 거기서 내가 이 사람을 봤다" 그러면 나는? "나는 그 사람이 봤다" 이런 식의 상호부조로 둘 다 유공자가 되었다는 진짜, 정말 믿기 싫은 이야기다.
우리는 이 말의 확장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했다고 들었다." 여기에 더해 심지어 거짓 증언을 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성스러운 민주화 운동에 이 무슨 개 같은 괴담이란 말인가. 엄밀하게 이는 괴담도 아니다. 얼마든지 투명하게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괴담 넘치는 사회, 이런 시시한 괴담부터 좀 줄여나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