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공정 역린 건드린 개각, 유시민 발언… 역린 건드려, "정권은 짧다" 발언 역린 건드려…
역린(逆鱗)은 "거스를 역, 비늘 린"으로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나 있는 비늘"이란 뜻이다. 즉 건드리지 말아야 할 권력자나 상대방의 치명적인 약점 혹은 극도의 노여움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발작 버튼'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버튼은 누르기만 하면 곧바로 급발진하거나 폭발하게 되니, 가속 페달이거나 지뢰라고 봐도 되겠다.
이 말은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 편에 나온다. 신하가 군주를 설득하기 어려움을 서술한 대목이다. 즉 "무릇 용이란 동물은 유순하여 익숙해지면 탈 수 있다. 그러하나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인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어서,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린다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人主]에게도 역시 역린이 있으니, 유세하는[說] 자가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거의 성공한 것이다." 참고로 '유세할 세' 자는 '말씀 설, 기뻐할 열, 벗을 탈'로도 읽을 수 있는 좀 까다로운 글자이다.
『본초강목』 「린지일(鱗之一)」의 '용' 조목에 보면, 용은 "비늘 있는 동물의 우두머리[鱗蟲之長]"로 81개의 비늘을 갖는다고 했다. 이것은 양(陽)의 가장 큰 수인 9를 두 번 곱한 수(9×9=81)이다. '역린'은 그 가운데 턱 아래(목덜미) 위치한 비늘이다.
아울러 중국에서 '용'은 전통적으로 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용의 발가락 수는 권력의 서열에 따라 달랐다. 황제(천자)는 5개, 책봉받은 왕(제후)은 4개 또는 3개였다. 어쨌든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군주는 대개 성질이 제멋대로라서, 아부가 아닌 간언하고 설득하는 것이 참 어렵다. 신하가 군주에게 말을 잘못했다가는 자칫 그 성질을 건드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용을 잘 길들이면 그 등에 올라탈 수도 있듯이 군주 또한 잘 다루어야 한다. 용의 목 아래쪽에 있는 역린을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되듯, 군주의 격노 버튼만 누르지 않고 잘 다루면 일이 수월하게 풀려간다. 이렇듯 권력자의 비위를 맞춰 가며 신하 노릇 하기란 힘든 일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집에 '역린'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용은 임금, 그리고 윗사람을 상징한다. 모든 '갑'들은 역린이라는 분노 버튼을 갖는다.
한편 세상의 모든 '을'은 역린 대신에 원한(르상티망·ressentiment)을 품는다. 나아가 일제강점기의 역린은 "일본의 역린에 불촉(不觸)코…"(동아일보, 1936.8.5)처럼 당시의 식민지배자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미국일 수도 중국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사성어가 유래한 『한비자』로 돌아가 보면 역린의 초점은 용이 아니라 군주의 분노였다.
옛날은 옛날일 뿐. 지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거대한 역린은 무엇인가. 군주? 제국?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이 배를 띄울 수도 뒤집어엎을 수도 있듯, 국민은 대통령을 만들 수도 주저앉힐 수도 있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국민의 역린을 자꾸 건드리지 말자. 돈을 푼다고 가라앉을 일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