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게임사 국내대리인 1년, 81곳 모두 지정했지만 환불은 여전히 본사 손에

입력 2026-10-11 12: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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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대상 전원 지정, 현장 조사서 유령회사는 없었다 해외사 상대 분쟁조정은 열에 일곱 불발…개정법 시행까지 공백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해외 게임사가 서비스를 접고 연락을 끊어도, 이제 국내에서 책임을 물을 상대는 있다. 해외 게임사 국내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한 게임산업법이 오는 23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의무 대상 81곳이 모두 대리인을 세웠고, 국회는 지난 1일 미지정 게임사의 국내 접속을 차단할 수 있는 개정안까지 통과시켰다. 그런데 환불을 받아내는 길은 아직 좁다. 대리인은 민원을 받아 본사에 전달할 뿐, 돈을 돌려줄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 97일 만에 접은 게임, 환불은 거부

해외 게임사 해피게임즈의 '블루 호리즌'은 출시 97일 만에 기습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하고 환불을 거부했다. 매출 1위에 올랐던 '버섯커 키우기'는 싱가포르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운영하다 접속 장애와 환불 요청에 불통으로 일관했다. 중국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는 한복 아이템 동북공정 논란 직후 공식 카페 글쓰기를 막고, 한국 서비스 일주일 만에 종료를 통보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국내에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항의할 창구도, 규제기관이 자료를 요구할 상대도 없었다. 국내대리인 제도는 이 빈자리를 메우려고 만들어졌다.

◆ 매출 1조원 또는 하루 설치 1천건이면 의무

전년도 글로벌 매출이 1조원 이상이거나, 모바일 게임의 국내 일평균 신규 설치가 1천건 이상인 해외 게임사는 국내대리인을 둬야 한다. 대리인은 확률형 아이템 표시 등 법이 정한 의무를 본사 대신 이행하고, 이용자 불만과 당국의 자료 요청을 받는다. 정당한 사유 없이 대리인을 두지 않으면 과태료 최대 2천만원이 부과된다.

지정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7월 의무 대상 81곳 가운데 80곳이 지정을 마쳤다고 밝혔고, 게임물관리위원회는 9월 말 나머지 한 곳까지 지정을 끝냈다고 집계했다. 의무가 없는데도 스스로 대리인을 둔 해외 게임사가 24곳 더 있어, 대리인을 운영하는 해외사는 모두 104곳이다.

게임위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현장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5~7월 점검한 지정 대리인 80곳 가운데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 확률 위반 열에 일곱이 해외사

대리인은 규제기관의 손발 노릇을 하고 있다. 게임위는 올해 6월까지 대리인 23곳을 거쳐 해외 사업자에 106건의 시정을 요청했다.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를 어긴 사례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위반이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위가 해외 게임사 게임물 1천205건을 기획조사한 결과 74건에서 위반 114건이 나왔다. 그중 열에 넷은 확률을 아예 표기하지 않은 경우였다. 확률 표시 위반 가운데 해외사 비중은 2024년 67%에서 2025년 72%로 되레 늘었다.

◆ 피해 신고는 늘고, 조정은 열에 일곱이 불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온라인 게임 피해구제 신청은 2024년 519건으로 한 해 전보다 80% 넘게 뛰었다. 2022년부터 3년간 쌓인 신청 중 열에 여섯이 계약 해제나 환불 거부 같은 계약 관련 분쟁이었고, 셋 중 둘은 모바일 게임이었다. 자녀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게임머니 600만원을 결제했다가 선불카드라는 이유로 환불을 거부당한 사례, 아이템 15만원어치를 사고 당일 청약철회를 요구했지만 플랫폼이 거절한 사례가 소비자원에 접수됐다.

해외 게임사가 상대방이면 구제는 더 어렵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초 펴낸 연차보고서를 보면 해외 사업자 상대 조정은 불응 등으로 70% 이상이 불발됐다. 조정 개시까지 평균 48일, 종결까지 평균 93일이 걸렸다. 게임위가 새로 연 확률형 아이템 피해구제센터에는 상담 609건이 들어왔지만 정식 접수는 11건에 그쳤다.

◆ 대리인은 창구, 돈은 본사에

대리인 지정이 끝나도 환불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 이유는 구조에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검토의견에서 대리인이 단순 소통 창구에 그쳐 환불 거부나 고의 잠적에는 강제 집행이 어렵다고 짚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도 대리인이 송달 창구일 뿐 환불 자금을 돌려줄 법적 책임이 없어 민사 배상을 강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과태료도 가볍다. 한 청년단체 사무총장은 "과태료가 2000만원에 그쳐 억지력이 부족하다. 자료 제출 요구를 넘어 실질적인 조사 권한을 강화하고, 해외 게임사와 국내대리인의 연락 의무와 처리 기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학과 교수 역시 수백억원을 버는 대형 해외사에 2천만원은 압박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다만 대리인을 세워 놓고 손 놓는 것도 게임사에는 부담이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게임산업법은 국내대리인이 위 업무와 관련하여 법을 위반한 경우 게임사가 그 행위를 한 것으로 본다. 명목상 대리인만 세워두고 방치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게임사에 돌아온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 접속 차단 카드, 내년 4월부터

국회가 지난 1일 본회의에서 의결한 개정안은 이 빈틈을 겨냥했다. 해외 게임사에 국내 이용자 피해 보호와 불만 처리 의무를 명시했고, 대리인을 두지 않으면 국내 접속을 차단할 수 있게 했다. 대리인은 본사가 세운 국내 법인이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을 우선 지정하도록 해 페이퍼컴퍼니가 끼어들 여지도 줄였다.

개정법은 공포 6개월 뒤 시행된다. 정부는 이달 국무회의에서 공포 절차를 밟을 예정이어서 시행은 내년 4월쯤이다. 그때까지 환불 거부를 당한 이용자는 지금처럼 소비자원과 분쟁조정위원회를 두드려야 한다.

시행 뒤에도 남는 숙제가 있다. 개정안은 해외사에 불만을 처리할 의무를 지웠지만, 대리인이 본사 돈으로 환불을 집행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다. 본사가 조정에 응하지 않을 때 접속 차단 외에 어떤 수단으로 환불을 받아낼지, 그 답은 아직 법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