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 한 권의 시집
나태주 지음/ 샘터 펴냄
벽돌력 800쪽, ■■■□□
두께 4.3cm
정가 5만2천원
예상 완독 기간 1년5개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 '풀꽃'처럼, 오래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야 할 800쪽짜리 시집이 나왔다. '이, 한 권의 시집'에는 시인이 평생 써온 작품 가운데 직접 고른 시 521편이 담겼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을 따라갈 필요도 없다. 아무 쪽이나 펼쳐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읽고 덮어도 좋다.
실린 시들을 하루 한 편씩 읽는다고 가정하면 꼬박 1년 5개월이 필요하다. 물론 시를 읽는 데 정해진 속도란 없다. 마음에 드는 시는 몇 번이고 되읽고, 어떤 날은 여러 편을 한꺼번에 읽어도 된다. 다만 80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얇고 가벼운 시집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9월 출간된 이 책은 시인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며 직접 완성한 일종의 문학적 결산이다.
◆벽돌 포인트
이 책의 두께는 단순히 수록 작품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나태주의 시 세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작품을 초기·중기·후기 세 시기로 나눠 실었다. 1부에서는 자연과 유년의 기억을 노래하고, 2부에서는 사랑과 일상의 기쁨을 담는다. 3부에는 삶의 성찰이 중심에 놓인다. 익숙한 시부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까지 함께 살피는 재미가 있다.
◆중도포기 위험구간
시집이라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800쪽이라는 숫자 앞에서 멈칫할 수 있다. 소설처럼 사건이 다음 장면을 끌고 가는 책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만 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이 시집은 처음부터 완독을 목표로 삼기보다 하루에 몇 편씩, 눈길이 가는 제목부터 읽어나간다면 중도 포기란 없다.
◆800쪽을 다 읽고 나면
책장을 덮고 나면 무심코 지나친 길가의 꽃 한 송이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순간을 오래 바라봐 온 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풍경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521편을 읽고 얻는 건 거창한 인생의 해답이 아니라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 몇 개일지도 모른다. 책의 두께에 비하면 소박한 수확이지만 평범한 하루를 다르게 보게 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추천 독자
'풀꽃'을 좋아하지만 나태주 시인의 다른 작품은 많이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좋은 출발점이 될 만하다. 이미 여러 시집을 읽어온 독자에게는 익숙한 대표작을 다시 만나고, 그 주변에 놓인 작품까지 살펴볼 기회다. 책상이나 침대 머리맡에 두고 하루 한 편씩 읽어도 좋다.






